[book] 역사가가 그린 근대의 풍경 > 모도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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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07-08 10:39:55
조회: 7,518  
제목 [book] 역사가가 그린 근대의 풍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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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 지음
푸른역사 | 2003
 
 
 
<책을 내며 > 중에서
 
모호한 근대를 찾아서
 
한국서양사학회 회원 중에는 1970년대 중엽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 당시 서양사 연구에 뜻을 둔 우리들에게 중요한 화두는
근대화, 산업화, 노동계급, 사회주의와 같은 언어였다.
이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그 이면에는 서유럽이 자생적인 근대화 과정을 거쳤던 데 비해 우리는 아직 '미완의 근대'에 머물러 있다는
콤플렉스가 깃들어 있었다.
 
자생적인 근대라는 이러한 환상은 후일 일본 사회경제사학의 지적 세례를 받으며 더욱 더
뚜렷하게 나의 노리에 새겨졌다. 서유럽의 근대화야말로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지배 구조와
시민문화의 발전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발생적이라기보다는 진보를 믿었던
무수한 사람들의 의식적인 노력의 산물이었다.
 
......
 
 
근대화를 바람직한 변화로 바라볼 경우, 그 내용보다는 근대로의 이행이 우선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이행이 어떤 사회 세력의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이루어졌는지를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역사 연구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 자본주의 이행을 바라보는 일본ㄴ 역사가들의 문제의식이 우리와는 조금 달랐다는 점이다.
그들은 전쟁의 패배를 일본의 왜곡된 근대화의 필역적인 결과로 생각했다.
일본의 근대화가 지배계급에 의해 위로부터 진행되었기 때문에 파행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그들은 위가 아닌 아래로부터 일어난 자생적은 근대화
경로를 역사 속에서 파악하는데 주력하였고, 마침내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서유럽의 사례에서 그 전형을
찾고자 했다.
 
......
 
 
이제 젊은 세대의 역사가들은 근대로의 이행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옛날에 나를 사로잡았던 이행 논쟁은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다.
근대 자체에 대한 회의가 증폭된 지금, 그 근대로의 이행이 어떤 중요성을 가질 것인가.
근대에 대한 회의와 성찰은 새로운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겠지만, 나는 '근대성(modernity,현대성)'을 둘러싼
오늘날의 담론에 식상하는 편이다.
그 담론은 '분명한 근대'를 설정한다.
근대적 주체, 시장주의, 자본 축적, 산업주의, 국민 정체성, 합리성 등이 이 분명한 근대를 드러내는 언어들이다.
 
그러나 나는 지난 20여년 간 영국 근대의 이곳저곳을 답사하면서 그것이 반드시 분명하지는 않다는 것,
오히려 대부분 모호하고 흐릿한 무습으로 나타날 뿐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나는 19세기까지 어어온 영국 근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근대성의 분명한 흔적들을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항상 모호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내가 답사한 영국 근대는 20세기와 비교하면 너무나 뚜렷한 단절을 보여준다.
그것은 영국만이 아니라 일찍이 산업화를 겪은 서유럽의 다른 나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단절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시대의 현상들에 너무 집착하며 그것들의 기원을 찾는다는 미명 아래
과거를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역사가 우리의 삶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보여준다고는 믿지 않는다.
역사가는 확연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우리의 삶과 주위를 둘러싼 이 세계는 그렇게 결론을 내릴 만큼 투명하거나 단순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