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시 건축의 방향성을 모색하다
김성홍 지음
현암사 | 2009
<머리말> 중에서
학생들과 건축을 공부하면서 전통 건축과 서양 건축, 그리고 현실 도시 사이의 심각한 괴리와 대립을 느껴왔다. 빽빽이 들어찬 아파트와 상가, 그 위에 다닥다닥 붙은 간판이 우리가 매일 만나는 도시의 얼굴이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이런 도시 현실과 건축 예술의 갈등을 배우지 않는다. 반면 서양과 동아시아의 불균형 위에서 서양 건축사와 이론에 무게를 둔다. 우리 도시의 열악한 모습 앞에서 그들의 이론과 실험은 더욱 빛나 보인다.
<도시 건축의 새로운 상상력>의 무대는 서울로 대표되는 한국의 도시다. 서울은 한국 도시의 모든 문제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전통 건축, 서양 건축, 도시 계획의 눈으로 보면 혼돈 자체다. 그러나 혼돈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역동성의 반증이다. 전 세계 최고 밀도의 거대 도시, 서울이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이 대단하다. 질풍노도와 같이 달려온 지난 50년간의 과정에 비판은 필요하나 자괴할 필요는 없다.
서울은 상파울루, 뭄바이를 제치고 전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면서, 도시 인구 밀도가 최고인 도시다. 게다가 수도권에 전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매우 기형적인 도시 국가다. 한국의 도시화율은 83%로 세계 최고다.
서울은 600년 역사 도시면서도 가장 비역사적인 도시다.전반 550년의 자취보다 후반 50년의 변화가 서울의 현재 모습에 가깝다. 전통과 식민, 서양의 근대성과 아시아의 잡종성이 얽힌 곳이 서울이다.
지난 50년 이상 건축 교육과 실무를 지배해 온 서양의 근대 건축은 과연 한국 현대 건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도시 경관을 좌우하는 아파트와 거대 복합 건축물 사이의 대안은 가능한가? 대로변의 번듯한 상업 건축물과 뒤편의 허접한 주거 건물들의 혼성 풍경은 건축 디자인의 걸림돌인가?
건축가들이 도시의 사실성을 초월한 문화 정예로 만족하면 문화 권력과 공생하면서 그 주도권에 안주하게 된다. 그러나 다수의 건축가는 사회의 일반 인식과 달리 과노동. 저임금의 구조적 악순환에 빠져 있다.
이 책이 건축 역사나 이론에 관심 있지만 감히 체계적으로 공부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입문서로, 교과서 없이 건축 설계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부교재로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학계와 현장, 건축과 도시를 잇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