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지음
이레 | 2007
차례
1. 행복을 위한 건축
2. 어떤 스타일로 지을 것인가?
3. 말하는 건물
4. 집,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
5. 건물의 미덕
6. 들의 미래
<행복을 위한 건축> 중에서
... 집은 식견을 갖춘 증인으로 성장했다. 집은 연애가 시작될 때 관여했으며, 숙제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포대기에 폭 싸인 아기가 병원에서 막 도착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한밤중에 부엌에서 소곤거리며 나누는 이야기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창문이 언 콩껍질처럼 차가웠던 겨울 저녁도 겪었으며, 벽돌 벽이 새로 구운 빵의 온기를 간직하던 한여름의 어스름도 겪었다.
집은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인 성소가 되었다. 정체성의 수호자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소유자들은 밖으로 떠돌던 시절을 끝내고 돌아와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했다. 일층의 판석들은 노령과 나이든 우아함을 이야기한다. 반대로 부엌 진열장의 규칙성은 위협적인 느낌은 주지 않는 질서와 규율의 모범이다. 커다란 미나리아재비가 인쇄된 매끈한 탁자보가 덮인 식탁은 그 옆의 엄격해 보이는 콘크리트 벽 때문에 더 장난스러워 보인다. ... 창턱 유리 항아리에 꽂힌 수레국화는 우울의 흡인력에 저항하도록 힘을 보태준다. 위층의 텅 빈 좁은 방은 회복을 꿈꾸는 생각들이 부화하는 공간이다.천창은 크레인과 굴뚝 위를 빠르게 움직이는 초조한 구름들을 향해 열려 있다.
그러나 건축에 대한 관심은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주제의 진지성, 그 도덕적 가치, 그 비용에 관하여 의문이 제기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이 장식과 설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경멸하고,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들에 만족하라고 강조했다. 그런 사람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 건축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위대한 건축물을 창조하려는 야망을 의심할 이유는 부족하지 않다. 건물은 그것을 짓는 일에 들어가는 노력을 드러내는 경우가 드물다. 그들은 파산, 지연, 자신들이 일으키는 공포와 먼지에 관해 수줍게 입을 다문다. 냉담한 외관은 자주 거론되는 그들의 매력적 특징의 하나다. 건물을 직접 지어볼 때에만 우리는 건축 재료와 공사 관계자들이 우리의 설계에 협력하도록 설득하는 일, 유리 두 장이 깔끔한 선으로 만나 결함하게 하는 일, 등이 층계 위에 대칭으로 걸려 있게 하는 일, 필요할 때 보일러가 켜지게 하는 일, 콘크리트 기둥들이 지붕과 불평 없이 결혼하게 하는 일과 관련된 괴로움을 알 수 있다.
건축은 또 당혹스럽기도 하다. 자신에게 행복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으니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면서도, 그 능력은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건물이 가끔 상승하는 기분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가장 마음에 맞는장소도 우리의 슬픔이나 염세를 덜어주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제프리 바와나 루이스 칸이 지은 건물 안에서도 별것 아닌 일로 말다툼을 벌이다 이혼하겠다고 협박할 수도 있다. 집은 어떤 기분을 함께 느껴보자고 권유하지만, 우리 자신은 그런 느낌을 도저히 불러내지 못할 수도 있다. 가장 고귀한 건축이 때로는 낮잠이나 아스피린이 주는 작은 위안에도 못 미칠 수 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빈에서 누이 그레틀을 위한 집을 지으려고 3년 동안 학계를 떠났다가 그 일이 생각보다 엄청나다는 것을 깨달았다. <논리철학 논고>의 저자이기도 했던 이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철학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장담하는데, 훌륭한 건축가가 되는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