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가려 뽑은 현대 한국의 명산문
방민호 엮음
향연 | 2003
복잡하고 고단한 일상속에 있을 때, 한번씩 수필을 보게 된다.
흔들리는 신념을 바로잡아 줄 한 줄의 글을 찾을 수도 있기에.
<꽃송이 같은 첫눈>_강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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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보이지 않고 눈송이로 뽀하다. 그리고 새로 한 수숫대 바자 갈피에는 눈이
한 줌이나 두 줌이나 되어 보이도록 쌓인다.
보슬보슬 눈이 내린다. 마치 내 가슴속까지도 눈이 내리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듯 마는 듯한 냄새가 나의 코끝을 깨끗하게 한다.
무심히 나는 손끝을 굽어보았다.하얀 옥양목 위에 발갛게 피가 배었다.
'너는 언제까지나 바늘과만 싸우려느냐?'
이런 질문이 나도 모르게 내 입 속에서 굴러 떨어졌다.
나는 싸늘한 대문에 몸을 기대고 어디를 특별히 바라보는 것도 없이
언제까지나 움직이지 않았다. 꽃송이 같은 눈은 떨어진다, 떨어진다. (신동아 1932. 12.)
<신념 있는 생활>_김기림
모든 신념을 차례차례로 다 잃어버린 생활처럼 지옥은 없을 것이다.
무엇이고 신념을 가지고 살고 싶다. 지극히 희미한 일,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좋으니
거기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걸어가고 싶다. (조광, 1939. 1.)
<단념>_김기림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별게 아니었다. 끝없이 단념해 가는 것, 그것뿐인 것 같다.
산 너머 저 산 너머는 행복이 있다 한다. 언제고 그 산을 넘어 넓은 들로 나가 본다는 것이
산골 젊은이들의 꿈이었다. 그러나 이윽고는 산 너머 생각도 잊어버리고 '아르네'는 결혼을 한다.
머지 않아서 아르네는 사, 오 남매의 복 가진 아버지가 될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수많은 아르네들은 그만 나폴레옹을 단념하고 셰익스피어를 단념하고
토마스 아퀴나스를 단념하고 렘브란트를 단념하고 자못 풍정낭식한 생애를 이웃 농부들의 질소한
관장 속에 마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주 단념해 버리는 것은 용기를 요하는 일이다. 가계를 버리고 처자를 버리고
지위를 버리고 드디어 온갖 욕망의 불덩이인 육체를 몹쓸 고행으로써 벌하는 수행승의 생애는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은 무에 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아주 반대로 끝없이 새로운 것을 욕망하고 추구하고 돌진하고 대립하고
깨뜨리고 불타다가 생명의 마지막 불꽃마저 꺼진 뒤에야 끊어지는 생활 태도가 있다.
돈 후안이 그랬고 베토벤이 그랬고 <장 크리스토프>의 주인공이 그랬고 랭보가 그랬고
로렌츠가 그랬고 고갱이 그랬다.
이 두 길은 한 가지로 영웅의 길이다. 다만 그 하나는 영구한 적멸로 가고 하나는 그 부단한 건설로 향한다.
......
이십 대에는 성히 욕망하고 추구하다가도 삼십 대만 잡아서면 사람들은 더욱 성하게 단념해야 하나 보다.
학문을 단념하고 연애를 단념하고 새로운 것을 단념하고 발명을 단념하고 드디어는 착한 사람이고자 하던
일까지 단념해야 한다. 삼십이 넘어 가지고도 시인이라는 것은 망나니라는 말과 같다고 한 누구의 말은
어쩌면 그렇게도 찬란한 명구냐.
약간은 단념하고 약간은 욕망하고 하는 것이 제일 안전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단념은 또한 처량한 단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술에 있어서도 학문에 있어서도
나는 나 자신과 친한 벗에게는 이 고상한 섭생법을 권하고 싶지 않다.
'일체냐 그렇지 않으면 무냐?'
예술도 학문도 늘 이 두 단애의 절정을 가는 것 같다. 평온을 바라는 시민은 마땅히 기어 내려가서
저 골짜기 밑바닥의 탄탄대로를 감이 좋을 것이다. (문장, 194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