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 모도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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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8-11-04 14:54:54
조회: 8,326  
제목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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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jpg 질 들뢰즈 | 이찬용 옮김
 문학과 지성사 | 2004
 
 
 
 
 
 
 
 
<옮긴이의 말> 중에서
들뢰즈는 라이프니츠주의자인가? <차이와 반복>을 거쳐 <천 개의 고원>에 이를 때까지, 그가 함께 했던 선배는
베르그송과 스피노자 그리고 니체가 아닌가? 확실히,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라이프니츠에게 온전한
지지를 보내는 것 같지 않다. ... 이 저서 안에서 라이프니츠는 들뢰즈의 아군과 적군 사이에 서 있는 유일한
철학자인 듯하다. 생성의 철학과 재현의 철학, 차이의 철학과 동일성의 철학, 사건의 철학과 주체의 철학
양편으로 구분하는 들뢰즈의 지형도 안에서 모나드의 도시는 중립국처럼 놓여 있다.
 
<차이와 반복>은 확실히 니체를 위한 책이다. 이 책에서 각 장의 결론은 니체를 향해 달려간다. 여기에서
라이프니츠는 니체의 우주로 도약하기 위한 받침대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들뢰즈가 라이프니츠에게로 되돌아간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들뢰즈에 따르면,
바로크는 어떤 재구축과 관련된다. 그것은 신학적 이성이 붕괴되는 시기에, 새로운 방식으로 이유율을 탐색하고
불균질한 것들로부터 이성을 구축하려는 정신적 운동을 의미한다. 라이프니츠의 자연학은 암맥, 소용돌이, 혼돈을
품고 있으며, 그의 형이상학은 무한한 주름, 불협화음을 통해 세워져 있다. 그후 우리는 다시 한번, 흔한 말이지만,
이성의 붕괴 시대에 살고 있다. 칸트가 구축한 인간적 이성은 니체에 이르러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라이프니츠는 우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새로운 사유,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려는 철학자에게 그는 영원한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