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신화 Stanislaus von Moos 저 | 최창길 역
기문당 | 1999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은 원래, 스위스 태생의 유명한 학자,예술가,문학가에 대한 연구논문의 하나로서 쓴 작품이다.
당시(1968년), 르 꼬르뷔제의 작품과 생애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는 별로 없었으므로 그 빈 자리를 메우는
것이 내가 목표로 하는 바였다.
......
얼마 전 그의 죽음을 우리 모두가 슬퍼한 바 있지만 아직 그의 생애나 작품에 대해 종합적으로 소개된 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빈 틈을 메우기 위해 저술된 것이다.
......
르 꼬르뷔제라는 현상은 단순한 부대현상付帶現象이 아니다. 그 뿌리는 시대라는 양분 그 자체 속에 박혀 있다.
르 꼬르뷔제의 상상 속에서는 기계의 시대에 접어들자, 근대기술이야말로 비록 혼란은 있을지언정
그 놀라운 잠재력으로서 단순한 인간사회 재조직의 출발점이 될 뿐 아니라 새로운 생활양식에 대한 출발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르 꼬르뷔제는 모든 것을 신선한 눈길로 직시한다. 근대예술에 유래되는 전설의 재료나
형태는 그 때까지 그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던 형태의 언어로 바뀐다.
민중을 대도시로 몰아넣는 인구의 폭발적 증가나 경제의 집중 현상 등은 오랜 동안 건축가의 권능에 속해 있지 않았던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것이 바로 도시 문제이다.
르 꼬르뷔제는 더 없이 훌륭한 예술가이며 시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사상, 그의 행동은 당연히 근대예술이 제출한
자연에 대한 새로운 파악방법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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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환상을 가지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르 꼬르뷔제가 추구했던 목적이나, 그가 싸움터에서 내던진 논의는 이미
우리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역사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르 꼬르뷔제에 의해 진행된 논의의 적잖은 부분이
아직까지도 현세의 건축과 도시계획의 모든 논의에서 기초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전 세계의 건축 잡지가 르 꼬르뷔제의 유산으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대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현대건축의 카탈로그로 간주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경솔한 생각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 것이 아닌 어느 일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유래되었다. <옳은가, 그른가>하는 너무나도 안이한
입장을 버릴 수 있는 마음가짐, 전체상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취할줄 알아야 한다.
도시의 정의와 현대건축을 둘러싼 싸움터의 화약연기에는 아직 무겁고 고통스러운 것들이 있으며 우리들의 과제를
해결하는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건조물은 그 가장 작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크기에 맞춘 정확한 척도에 따라야 함과 동시에 하나의 상상력,
하나의 시적우주론이 관찰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도출해낸 데에 르 꼬르뷔제의 공헌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책에서 전개하려는 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