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건축이냐 혁명이냐 _ 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모도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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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1-12 13:01:08
조회: 5,795  
제목 [book] 건축이냐 혁명이냐 _ 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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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 2015
 
 
 

모든 산업의 분야에서,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면서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들이 발명되어왔다.
만약 이러한 새로운 사실들이 
과거의 것들에 대체된다면
이것이 바로 혁명인 것이다.
......
새 시대란 길고도 조용한 준비 작업후에만 도래하는 것이다.
......
모든 것은 어떠한 노력이 진행되는가에 좌우되며
또한 이와같이 우리를 경고해주는 증상들에게 기울여지는 주의에 의존한다.

건축이냐 혁명이냐
혁명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건축을 향햐여> 르 코르뷔지에, 1927 중 마지막 장 <건축이냐 혁명이냐> 중에서



정지돈의 단편소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조선시대 마지막 황족인
이구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여러가지 인용들로 소설의 줄기를 형성한다.
소설의 제목이 근대 건축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의 책에서 나온 단어인 것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상당히 많은 부분이 건축적 상황들로 묘사된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이지만
조선이 황제국이 된 건 단지 침몰하는 나라의 마지막을
부둥켜안는 고종의 발악이었고,
나는 그저 생물학적 아들의 아들에 불과한데,
이게 지금 시기에 무엇이 중요하며,
그들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려 하는 것일까요.

이승만에게는 황족이라는 이유로 국적도 없이 쫓겨나고,
박정희에게는 군사정권의 정통성을 세우는 도구로 이용당하는 비운의 황세손.

자신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관심도 없었고,
바야흐로 국적 따위 상관없는 시대는 도래하고,
위조 여권을 들고 미국에 도착하여
엠아이티에서 건축을 공부하게 된다.

1950년대는 전 세계가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들떠 있는 시기였고,
그곳이 자본주의국가든 공산주의국가든 모두 새 건물을 짓고 새 다리를 짓고 새집을 지었다.

건축은 땅 위에 시를 짓는 일입니다, 라는 르 코르뷔지에의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엠아이티 공대를 졸업한 후 이오 밍 페이의 뉴욕 건축사무실에 들어간다.

미국 복싱계의 명사 진 다니를 만나고, 그를 통해 아내가 될 우크라이나 여성 줄리아를 만난다.
1963년 미국을 떠난 이후 사십 년을 한국에서 살았던 그녀는,
그때 우리는 행복했고 행복할 땐 행복한 줄 모른다는 사실을 행복하지 않은 뒤에야 알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이후 영원히 행복하지 않을 줄은 몰랐습니다, 라고 회고한다.

6.25전쟁 이후 서울은 백지에 가까운 도시였고, 
우리가 지금 보는 대부분의 건물은 이후 새롭게 지어진 건물들이다.
독특하고 엉망인 건물이 즐비한 서울에서
이 건물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데 건물을 지을 때 건축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라고 생각하는 화자는 
21세기가 지나서야 서울의 낡은 빌딩들, 아파트들, 
어처구니없는 형태로 지어지기도 하고
정부의 과한 욕심에 볼썽사납게 지어지기도 한, 
전 시대의 흉한 건물들을 사람들은 매력적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새서울 백지계획은 1966년 취임한 김현옥 시장의 지휘아래 시행된 무모한 도시계획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삼백만을 위한 오늘의 도시'를 모방한 것으로
도시의 외곽선을 무궁화 모양으로 만든다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였다.
'도시는 선이다'라는 구호로 요약되는 김현옥의 도시론으로 수백개의 고가도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강의 쓸모없는 섬을 폭파해 여의도를 만들고,
이 섬, 지금은 친환경의 대명사가 된 밤섬을
쫓겨난 주민은 노숙자 신세로 전락했다가
뒤늦게 와우산 밤섬마을로 이주한다.
와우아파트가 부실공사로 인해 무너진 것을 계기로 김현옥시장은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서울은 이미 지천이 공사판이 된 상황.

새서울 백지계획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각종 언론 매체가 이용되는데,
일간지를 비롯하여 김수근이 창간한 <공간>지는 창간호의 절반을 이 계획안으로 채운다.
지면을 채우기 위해 호출된 전문가들 중 김중업은, 
백지계획에 포함된 모든 디테일을 개무시하는 의견을 실었다가 국외로 추방된다.
프랑스에서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 건축을 익히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국내로 들어오게 되지만,
국내에서 수행한 마지막 작업,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귀국하여 국내에서 건축 활동을 하던 이구는,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는데
이 때 이구를 만난 건축가 김원은 그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설계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욕실을 그리세요.
그것은 일종의 면벽 수련입니다.
욕실 안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욕실을 그리고 나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966년부터 1978년까지 트랜스 아시아의 부사장으로 일했고
73년에는 측량회사를 차려 70년대 내내 동남아와 중동으로 외유를 다녔다고 알려진
이구가 정확히 70년대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당시에 이구를 만난 유덕문은 밤섬이 고향인 사람으로
이구가 들려준 이야기를 전해준다.

내가 지은 건물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벌써부터 숨이 막혀오고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나는 선 하나 제대로 그을 수 없는 지경에 사로잡히지만
임박해온 마감 날짜와 시공 날짜 때문에 견딜 수 없는 자기혐오와 좌절에 사로잡히지요.

이구는 집을 기계로 짓기 시작한 이후 몰락이 시작됐다며 직접 벽돌을 지고 손에 흙을 묻혀야 합니다.
집은 손맛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 좋은 상태로 생을 마감하지 않은 이구의 삶의 궤적을 따라 읽다보면
한국의 굴곡지고 왜곡된 건축의 역사와 함께 근현대사가 겹쳐진다.

이 소설이 여러 젊은 작가들의 작품중 대상의 영예를 차지했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문학상은 친구가 친구에게 주는 바보들의 잔치다!'라고
자신이 받은 상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후장사실주의자라 칭하는 작가는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인용이다. 문학은 세계의 인용이다....
후장사실주의는 문학의 인용이다.
그러므로 후장사실주의는 세계의 인용의 인용이다."라고
설명한다. (씨네21 NO.1033 p.68)

젊은작가상의 심사위원중에는 이 소설이 왜 새로운지,
이것이 과연 소설인지, 이 글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이도 있다.

또한 2015년의 문학계를 비롯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표절논란의 유명작가도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어쩌면 문학계의 권력 구조는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막강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소설집을 덮게 된다.

그 권력구조가 비단 문학계에만 형성된 것은 아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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