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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2-11 10:44:07
조회: 5,617  
제목 [book] 하이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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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 발라드 | 공보경 옮김
문학수첩 | 2012


차례
1 입주 완료
2 파티 시간
3 보석상의 죽음
4 높은 곳을 향하여!
5 수직 도시
6 위험한 거리
7 떠날 준비
8 맹금
9 낙하지점으로
10 물 없는 호수
11 징벌 원정대
12 정상을 향하여
13 몸에 무늬를 그리다
14 최후의 승리
15 저녁의 오락
16 행복한 준비
17 호숫가의 정자
18 피에 젖은 정원
19 밤의 게임
옮긴이의 말



이런 곳이 있다.

총 5동으로 만들어질 단지에는 각 1000세대씩 입주할 수 있는 40층 짜리 고층 아파트가 지어질 예정이다.

이 중 먼저 지어진 첫번째 동의 1000세대에는 이천여명의 주민이 입주해 있다.
20대의 승강기가 바삐 움직이며 하층부와 중층부, 상층부의 주민을 실어나른다.

강의 북쪽 제방을 따라 2.6제곱킬로미터 넓이의 부지에
인공호수를 동쪽으로 내려다 볼 수 있으며
화려한 콘서트홀과 텔레비전 스튜디오가 가까이에 위치한다.

항공모함의 비행갑판만 한 규모의 10층 중앙 홀에는 슈퍼마켓, 은행, 미용실, 수영장, 체육관,
온갖 술이 갖춰진 주류 판매점, 건물 내 몇 안 되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초등학교까지 있다.

35층에는 수영장이 하나 더 있고, 사우나와 고급 레스토랑도 갖춰져 있다.

감동적일 만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고층 아파트에서는
100년전이라면 1개 부대쯤 되는 지칠 줄 모르는 하인들을 동원해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자족적으로 생활할 수 있어 좋기도 하지만,
너른 공간과 빛은 물론, 익명으로 살 수 있다는 미묘한 기쁨까지 만끽하며 살 수 있다.
그 자체로 '작은 수직 도시'인 곳.

6개월 전 이 고층 아파트 25층으로 입주한 로버트 랭 박사는
발코니에서 개고기를 뜯어먹으며 지나온 날을 반추한다.

온갖 사건과 사고를 거쳐 살아남은 후 누나인 앨리스와 나누는 대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니?"
"아니...... 일어날 일은 이미 다 일어났지. 이제는 모든 게 정상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어."

 
 
 


건축법 제2조(정의) 에는 고층(high rise) 건축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9. "고층건축물"이란 층수가 3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120미터 이상인 건축물을 말한다.

 
 
 
 


한 층당 높이를 4미터로 본다면, 40층짜리 건물의 높이는 160미터에 이를 것.

소설 속 40층짜리 고층 아파트는 10층과 35층의 공용부를 기준으로
하층부와 중층부, 상층부로 나뉘어 있다.

이 세개의 분류는 물리적인 층 구분만이 아닌, 각 층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기도 하다.

펜트하우스인 40층에는 이 아파트를 설계한 건축가 앤서니 로열과,
보석상과 그의 아내가 사는 집 2세대만 있으며
야외 조각정원에서는 수시로 파티가 열린다.

31층의 주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파티를 여는 통에 이웃 주민들을 불편하게 하지만
이 아파트의 거주민들 누구나 파티를 열고 있으니 불만은 안으로만 쌓여가는 상황이 수개월간 이어진다. 40층의 보석상이 의문의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입주민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이 사고를 외부에 알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이라기 보다는 지나치게 값비싸게 매겨진 감방에 살면서도
남들보다 문명화된 거주지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
거대한 아파트 건물에서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한 것.

1층에서 9층까지의 하층부,
11층에서 34층까지의 중층부,
36층 이상의 상층부.

하층부인 2층에 거주하는 리처드는 텔레비전 프로듀서로 고층 아파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중이다.
거대한 공동주택 단지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느끼는 신체적,심리적 압박감을 예리하게 조명하고자 한다.

중층부에 살고 있는 로버트는 이혼후 몇 개월을 혼자 살다,
"텅 빈 건물에서 혼자 사는 것처럼 생활할 수 있다니까. 생각 좀 해봐, 로버트." 라며
이 건물의 서비스가 제공하는 효율성, 탁월한 사생활 보장을 강조하는 누나의 권유로 입주한다.
중층부에 해당하는 25층에 들어와 살다보니 처음부터 상층부로 입주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2층에 거주하는 리처드의 아내 헬렌은 하층부를 떠나
중층부에 속하는 15층에서 30층 사이로 이사 가는 것을
'보다 수준 높은 거주지'로 옮겨가는 사회적 출세로 여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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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이 날 정도의 거대한 규모인 40층짜리 아파트.
아이들을 배려하지 않고 설계되어 애들이 놀 만한 공터라고는 주차장뿐이다.
사소한 결점들은 대부분 건축가들이 지나치게 비싼 아파트를 제대로 설계하지 못해 발생한 것이다.
입주민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건물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툼 대부분은 사소한 일에 발끈하는 이들이 주도하고 있다.
조용하고 말없는 중층부 주민들.
고층 아파트 건물이 창조해 낸 새로운 사회적 유형인 이들은,
어지간해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냉정한 성격을 가졌다.
고층 아파트 생활이 유발하는 심리적 압박감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사생활 보장에 대한 필요성을 최소한으로만 요구한다.
중간 입장을 견지하면서 첨단 기계처럼 번영하는 이들은,
비싼 아파트에서 텔레비전 소리를 죽여 놓고 화면만 쳐다보고 앉아서
이웃들이 실수하기를 기다리며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 비싼 공동주택은
'음모와 파괴의 씨앗을 스스로 뿌려 대는 공중 궁전'에 다름 아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증거들에 따르면,
이런 고층 아파트에서는 제대로 된 사회 구조가 형성될 수 없었다.
그러나 입주자들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비용 효율성이 높고 개인적인 면에서 수익성이 높은 수직형의 거주지는
계속해서 형성되고 있다.

고층 아파트가 생겨난 순간부터 반달리즘이 열병처럼 퍼져 나갔다.

권력과 자본, 자기 이익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사회 계층의 세분화가
고층 아파트 내에서도 발생한다.

그러나 그들의 진짜 적은 그들 머리 위에 자리한 다른 층 주민들이 아니라,
그들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이 건물의 이미지,
그들을 바닥으로 짓누르며 층층이 쌓여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건축가 앤서니 로열이 이 아파트 단지에 공헌한 바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손길이 닿았던 그 얼마 안 되는 시설들,
10층의 중앙 홀과 초등학교, 어린이 조각 정원이 갖춰진 옥상의 전망대, 승강기 로비의 비품 배치와 설계등이 입주민들 사이에 반목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앤서니는 이웃들의 행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발밑에 두고 깔보았다.
이웃들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규격화된 실내 장식, 세련된 취향과 지적인 분위기에 거부감을 느낀다.
입주민들을 부유하고 교육을 잘 받은 신종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선봉대로 여긴다.
우아한 가구와 지적 감수성으로 무장한 채 탈출구 없는 비싼 아파트에 갇혀 사는 가여운 사람들.

아파트가 끼리끼리 무리지어진 자경단의 활동으로 폭동과 폭력, 혼돈에 휩싼인 상황에서
리처드는 2층에서 등반을 하듯 상층부로 힘겹게 장애물을 헤치며 오른다.
마침내 건물의 중반 이상을 올라오니 승리감에 도취되고, 창밖을 내다보니 바닥이 까마득하다.
그가 버리고 올라온 세상의 일부.

하층부는 이미 운이 다했다.
아무리 아이들의 교육에 힘을 쏟아 봤자,
학대받는 저층 집단이 고층 집단에 굴복하기 전
마지막 발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고층 아파트에서의 삶은 바깥 세상과 닮아가고 있다.
정형화된 틀 안에 무자비함과 공격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고층 아파트의 퇴락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로버트는 이미 미래 세상에 와서 살고 있었고, 지금은 기진맥진한 상태.

로버트가 발코니에 앉아 뜯어먹고 있는 개고기는 앤서니의 셰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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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며 이런 내용이 영화화 된다면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어
검색을 해 보니, 마침 2016년 3월 영국에서 개봉한다는 정보가 보인다.

현 시대를 압축해 놓은 것 같은 이 디스토피아 같은 고층 건물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