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009.12. 12 ~ 2010. 04. 04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2,3층
홈페이지 |
http://www.warhol.co.kr/ 앤디 워홀
살아있는 동안 돈과 명성을 모두 움켜진 예술가는 드물다.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잭슨 폴록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 삐놓을 수 없는 작가가 바로 앤디 워홀이다.
상업 디자이너로 출발하여 60년대 팝아트로 미술계 정상에 올라 미술, 영화, 저널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누구부다도 많은 부와 명성을 쌓았다.
그는 87년 담낭 수술 후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미국 문화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워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
한쪽에서는 미술의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부정과 도전으로 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위대한 예술가라고 평가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시대의 취향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성공한
상업 디자이너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워홀의 실크스크린과 '팩토리' 제작 방식 워홀을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미술가로 볼 것인가? 아니면 대중의 기호에 재빠르게 영합한 상업미술가로 볼 것인가? 그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이것만큼 적절한 질문은 없다.
워홀이 광고계가 아닌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초이다.
그는 <1달러 지폐>와 <2달러 지폐>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캠벨 수프 깡통>과 같은
익숙한 상품 이미지,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등과 같은 스타 이미지를 닥치는 대로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했다.
워홀의 이러한 작업 전에는 그 당시 지배적인 사조였던 추상표현주의에 반기를 든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제스퍼 존스가
각각 실크스크린 작업과 일상 오브제를 사용하면서 예술과 일상을 화해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들 작품 덕분에 일상 이미지를 실크스크린으로 작업한 워홀의 작품도 미술계에 순조롭게 진입할 수 있었고,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는 '공장(FACTORY)'이라고 이름붙인 작업실에서 타인의 작품이든 아이디어이든 상관없이 차용하였고,
조수를 고용하여 작품 제작의 전 과정을 맡겼으며, 동일한 작품을 상품처럼 무수히 반복하여 생산하였다.
마치 시장조사를 통해 이미지의 형태를 결정하는 광고처럼 작품 이미지의 색과 형태를 결정하고,
작품의 수량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결정하곤 했다.
이러한 생산 방식은 지금까지 예술의 본질이라고 여겨왔던 작품의 독창성과 유일성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일군의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들에게 워홀 작품은 광고 이미지처럼 쉽게 이해되고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위대한 예술이라고 하기에는 2% 부족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일상의 찬양과 실크스크린 워홀의 작품을 이렇게만 볼 것인가? 긍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널리 알려졌듯이 워홀은 실제로 50년대 뉴욕을 대표하는 <보그>, <하퍼스 바자> 등의 패션 잡지,
<컬럼비아 레코드> 등의 표지 디자인으로 큰 성공을 거둔 상업 디자이너였다.
그는 뉴욕의 화려한 광고계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누구보다도 '순수'예술가로 인정받길 바랐다.
그는 추상표현주의가 지나간 60년대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작품의 주제와 스타일을 찾는데 골몰했다.
워홀이 택한 것은 미국적인 것, 다시 말하면 미국 일상의 풍요로움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미국 피츠버그로
이민 온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워홀은 여름방학 동안 아르바이트 했던 백화점의 화려함과 풍요로움에
감동받고 미국 소비사회의 본성을 이해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광고 디자이너 시기에는 사치스러운 상품들을 어떻게 아름답게 장식할 것인지 고민했던 것처럼
어떤 방식으로 미국적인 것, 즉 일상의 풍요로움을 나타낼 것인지 몰두하게 된다.
결국 찾아낸 것이 실크스크린이다. "내가 이렇게 그리는 까닭은 기계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는 기계처럼 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라고 워홀은 말했다.
그는 사진을 이용한 실크스크린 작업을 통해 작품에서 개인적인 요소를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변하지 않는 영구적인 이미지를 얻으려고 한 것이다.
또한 그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하여 나란히 병렬적으로 배치하거나 혹은 색의 변화를 줌으로써
워홀이 나타내고자 하는 다양한 효과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난 수프를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수프를 좋아하면 난 기분이 좋아요" 워홀은 캠벨 수프에서 느끼는
친밀감을 확고하게 보여주기 위해 수프 깡통의 사진을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업은 미국의 일상을 찬양하기 위해 세심하게 선택된 방식이지
손쉬운 제작 방식이라는 이유로 채택된 것은 아니다.
물론 실크스크린이 익명성을 보장해주고 손쉽게 대량 제작을 할 수 있는 점에서 워홀의 구미에 맞다.
그러나 그가 이 방식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실크스크린이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연출하는데
최적의 방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시회 홈페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