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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09-19 07:01:18
조회: 217  
제목 [book]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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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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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지음 | 바다출판사 | 2024




차례


프롤로그

영화를 ‘쓴다’는 것


1장 어쩐지 잊히지 않는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프렌치 디스패치><퍼스트 카우>

언제나 지금 여기 우리 함께 <보이후드>

사유의 시작이 되는 영화가 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우연이 이야기가 될 때까지 <우연과 상상>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헤어질 결심><탑건:매버릭>

변하지 않는 건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뿐 <아이리시맨>

영화를 향한 향수병 <1917>

어떤 균열은 반갑다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2장 선명하다가도 흐릿한

영화가 사라진 자리에서 <감기>

“신세계가 구세계를 구할 것이다” <덩케르크>

액자가 그림의 일부일 순 있어도 <사울의 아들>

서사를 잃고 헛돌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설득당하고 싶은 마듬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반도>

겪어보지 못한 기억을 추억하기 <남매의 여름밤>

시네마는 마법의 이름이 아니다 <라라랜드>

거짓과 자기기만의 굿판 <곡성>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염력>


3장 뒤돌아보면 그곳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 번째 은퇴 선언 <바람이 분다>

그 감정이 거기에 있었다 (홍상수 초심자가 홍상수 초심자를 위해 쓴 가이드)

정의하길 멈추고 기억하기 <미나리>

네버랜드와 원더랜드 사이 어딘가에서 <승리호>

‘최고의 영화’에 대한 고찰 <기생충>

끝끝내 버텨내 오늘에 다다른 마음들 <파친코>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는 기록자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 나의 자리 <3월의 라이온> 16권 포장을 뜯으며 생각한 것

점, 선, 면으로 그린 환상의 세계 <환상의 마로나>


에필로그

지나간 영화가 나에게 말을 걸 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와 사랑, 그 운명에 대하여 <이터널 선샤인>



*** 책의 차례에는 영화 제목이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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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다고 고백하며 책을 시작한다.

씨네21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데뷔한 후에 기자로 입사하여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화에 관한 글을 써오다, 얼마전부터 편집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송경원 편집장의 글을 읽다보면 여느 평론가의 비평글과는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된다.


김씨는 좀 더 대중적인 영화를 통해 건축을 일상으로 스며드는 분야로 느꼈으면 하는 바램으로 <영화를 보고 건축을 말한다>라는 글을 써보기도 했는데,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저자의 '영화'라는 단어를 '건축'으로 바꿔보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상황이 겹칠 수가 있냐며, 재미있게 읽는다.


매 주 한 권의 영화 잡지를 완성하는 일이 도대체 가능한 일이었을까. 

처음 씨네21을 발간하기로 결정했을 당시에도 내부에서는 무슨 내용으로 영화 주간지를 채울 수 있겠냐며,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1995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우후죽순 많은 영화 잡지들이 주간과 월간으로 발행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남은 건 씨네21뿐. 어떤 힘이 이 잡지를 오랜 세월 동안 유지시켜줄 수 있었을까, 항상 궁금해하며 매주 우편으로 도착하는 잡지를 펼쳐본다.


저자를 비롯하여 씨네21의 기자와 객원기자들, 평론가들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는 것을 언제나 알 수 있다. 그것만이 오랫동안 이 잡지를 유지시켜온 하나의 원동력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송경원 편집장은, 글을 업으로 삼겠다 결심한 자는 정해진 시간에 마감을 당하는 좌절의 운명을 갖고 있다고 고백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어김없이 글이 쓰고 싶어지고, 머릿속에서 몇 가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간다. 뭔가 대단한 글이 나올 것 같은 가벼운 흥분에 휩싸여 힘차게 펜을 든다. 그리고 반드시 실패한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예정된 실패. 10년이 넘도록 답을 찾아 헤맸지만 아직 마감 잘하는 비결 같은 건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마감이 '어떻게' 끝날지는 몰라도 '언제' 끝날지는 확실하다.... 피로에 찌든 몸은 뒷일까지 생각할 체력을 허락하지 않는다. 금요일 오전은 짧은 행복과 해방감의 시간이다. 반나절의 달콤한 성취가 스치듯 지나가면 오후부터 자기반성과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렇게 주말 내내 천천히 수면 아래로 잠긴다.... 좋은 글이 뭔지 여전히 알 길이 없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계속 버티고 글을 쓰는지는 희미하게 감이 잡힌다.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실패와 좌절을 동반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15년간 영화와 대화를 나누면서 영화의 어떤 부분에 반응해 왔는지 되돌아본 고백의 궤적을 엮은 것,이라고 저자는 알려준다.


"점에서 선으로, 한 편 한 편 꾹꾹 눌러쓸 때는 미처 몰랐던 궤적이 이제야 보인다. 이 얼룩의 궤적이 당신에게 어떤 방식으로 가닿을지 모르겠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책에 담긴 실패의 고백들과 당신 사이 희미한 연결선이 그어지길 바라본다. 그제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다."


<프렌치 디스패치>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씨네21을 보며 알게 되었을 때, '이 영화는 영화 잡지 기자들이 꼭 봐야겠는 걸?'이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이 책의 첫 영화는 바로 <프렌치 디스패치>다. 


"매체가, 시대가, 삶이 바뀌고 있다. 끝자락에 선 기분이다.... 잡지 (혹은 세계)가 끝났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건만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이건 흘러간 과거일까. 아니면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일까. 중요한 건 여기가 길의 끝자락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발 디딘 자리에서 고개 들어 어디를 볼 것인가이다."


26년 만에 정식으로 개봉하는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시간의 풍화와 무관하게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걸작으로서 그 진가를 드러내는 이유가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현실에 한없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세상 모든 영화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현실이 되려 하지 마라.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고.


현실이 이야기로 구성될 때, 이야기가 현실로 변모하려 발버둥 칠 때 우리는 비로소 삷을 입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한다,며 <우연과 상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릇의 내용물보다 그릇의 형태에 집중하는 감독은 과대평가된 엔터테이너라고 생각한다며 저자의 의견을 차분히 정리한다. 흥미롭지만 알맹이가 없다고 느꼈다,는 솔직한 심정을.


같은 화면비를 사용한 세 개의 영화를 비교 분석하며 

"화면비는 인물의 시점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겠다는 관점과 태도의 문제다."라고 선언한다.

같은 화면비(1.33:1)를 사용한 <사울의 아들> <산하고인>(지아 장커, 2015) <자객 섭은낭>(허우 샤오시엔, 2015)을 소개하면서, 화면비가 단순히 과시욕으로 사용된 영화도 있으며, 적절한 화면비를 사용하여 세계와 인물들의 관계 맺음, 주관과 객관을 넘나드는 시점의 문제, 장면과 행간을 비워둔 접혀있는 시간의 문제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있다.(자객 섭은낭)고 극찬하기도 한다.



<2024. 0922>

<계속>


한 액션영화에 관하여는, 장식이 본질보다 과하다는 것, 카메라의 움직임이 주인공이 되어 지루함과 피로감을 느꼈음을 드러낸다. 


영화나 게임은 물론, 대다수의 미디어가 뒤섞이고 있는 흐름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P.176), 이라며 다만 경계가 얇아지고 서로를 닮아갈수록 

함부로 관객을 상상하지 말 것.

멋대로 대상을 판단하지 말 것.

무엇보다 주어진 형식의 가능성을 먼저 고민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챙길 것.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는 태도로부터 싹을 틔운다, 며

당부하고픈 말을 전한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이나 대만 뉴웨이브 영화 속에서 접했던 익숙한 공간들로 화면을 채우는 영화에 대해서는, 꾸며진 풍경을 전시하는 익명의 공간, 혹은 재현 위에 재현된 영화의 한계를 아쉬워한다. 재현이 아니라 포착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포착을 위해서는 '거기에 있는 것'을 찍을 필요, 혹은 '거기에 있는 것이 우연히 와서 찍'히도록 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시공간이 제시되지 않는 영화는, 삼인칭으로 바라보는 한여름 밤의 꿈일지도 모른다.


시끌벅적한 도로 위의 공연으로 시작하는 뮤지컬 영화를 보며, 이 영화의 이야기는 저토록 단순한데(가난한 남녀가 만나다 헤어지고, 여자는 성공한 나이든 남자와 만나 배우가 되는) 음악과 춤으로 채운 화려함이 무슨 의미일지를 한동안 되새긴 적이 있다. 저자는 분명 마법같은 순간을 선물하는 영화지만, 굳이 '시네마'란 이름표를 붙일 필요가 없으리라,고 평가하며 그런 이름표 따위 없어도 이미 충분하다고 감상을 전한다.


저 여성이 구해지기를 간절히 바랬으나 결국은 종말을 맞는 영화를 본 이후로 이 감독의 영화를 다시는 보지 않았다. 왠지, 관객을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던 건 김씨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며. 흥행마저 성공한 한 판 굿이 벌어지는 영화에 관하여 저자는, '모든 치장과 왜곡을 걷어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애초에 출구가 없는 악의적인 미로의 설계자가 바란 것은 무엇인가. 미로 속에서 퍼즐을 짜맞추고 있을 때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 때론 영화 바깥에서 슬며시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내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발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진실은 이 영화가, 그리고 감독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며 재능 있는 감독이 자신마저 속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반복적으로 걸려드는 영화가 있어 본의 아니게 보는 영화가 있다. 희한하게도 다음날 우연히 다시 틀어 본 TV에서 어제 보다 만 영화의 다음 장면이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도 하여 그럴 땐 영화를 계속 보게 된다. 그렇게 보게 된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며, '비극적인 현실의 상황을 왜 초능력을 동원하여 판타지로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었다. 저자는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잠시 젖혀두고, 반골 기질을 가지고 꾸준히 실패하는 감독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아직 준비가 안 됐을지라도.


감독 본인의 이름이 하나의 영화 장르를 형성한 감독에 대해, 저자는 꽤 오랫동안 ' 그 감독의 영화는 거의 비슷비슷해'라는 자기 변명 속에 있었다,며 두려움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덮어놓고 칭찬하거나 외면하거나, 둘 중의 하나인 평자들의 반응으로 보아 언어로 옮기기 난감한 텍스트라고도 평가한다.


<2024.1003>

<계속>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시작으로 자신의 영화 언어를 유지해오고 있는 감독의 꾸준함은 인정할 수 밖에. 간혹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를 보게 되는데, 그 때는 원본과 달리 다소 약한 어떤 지점이 발견되어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 시간, 그 자리, 그 인물과 함께 유일무이한 감정이 있고, 그 순간이 해체할 수 없는 덩어리가 되어, 정지하지 않고, 흐른다. 정확히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과 멈추려는 움직임이 공존한다. 우리는 두 움직임이 벌려놓은 틈새, 오솔길을 따라 그의 여정에 동행할 수 있다. 오직 영화로만 구현 가능한 유일무이한 형태. 설명되어서도 안 되고 설명할 수도 없는 덩어리. 영화는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존재하고 진실은 각자의 마음속에서 보이지 않는 형상으로 발화한다."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p.247)


<미나리>는 감독의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알려져 있다. 감독이 영항을 받았다는 소설 <나의 안토니오>를 먼저 읽는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민자의 위치가 전혀 공감되지 않아, 이 떠들썩한 영화를 보고싶었으나 아직 보지 않고 기다리는 중이다.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를 읽고나니 이제야 영화를 볼 마음의 준비가 시작된다. 


"<미나리>는 감독의 자전적 체험을 재료로 지은 집이다.... 재료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을지 몰라도 그걸 집으로 건축한 방식은 실로 의식적이고 투명하다. 미국 사회와 계급성, 이민의 기억 등을 상징적으로 배치한, 말 그대로 시대를 투사한 조감도라 불러도 좋겠다."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p.249) 


"과거의 상처를 회복하는 낭만과 현재로 이어지는 모순을 고발하는 서늘함 사이,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메울지가 당신이 선 자리를 증명한다."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p.257) 


기생충이 나오지 않는 영화 <기생충>도 한동안의 광풍이 모두 지난 후에 영화를 보았다. 평창동의 주택이 주요 배경을 이루고 있어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서울시 내에 얼마 남지 않은 단독주택 지역의 특색을 세트로 잘 만들어 내었고나, 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며 내내 의문을 품었던 지점은 수석이 왜 등장하는가, 였는데 이 책을 보며 그 의문이 해소되었다. 


"수석은 비유하자면 환상 속으로 들어가는 마법의 열쇠다. 우연히 기우의 손에 굴러들어온 수석은 계급 간의 이동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환상과 상위 계급에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을 함께 제시한다. 기우와 그의 가족은 불량품도 아니고 무능력하지도 않은데 제대로 된 일을 구할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 기묘한 가족이 낙천적일 수 있는 건 현실에 적응해서라기보다는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기우 가족은 이상하다. 이 가족은 가난에 심각해지지 않고, 부도덕한 행위에 당당하며 전문직 종사자만큼 기술적으로 움직인다. 요컨대 비현실적이다. 기우 가족은 자신이 속한 곳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보는 곳(또는 영화가 재현하는 곳)을 기준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p.277) 


영화를 보며 계급을 이동하려면 사기꾼이 되는 수밖에 없는건가, 라는 생각이 맴돌았는데, 감독의 출발은 늘 재미있는' 영화이며 해외 관객들에게 통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평에 공감한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영화의 쓰디쓴 메시지를, 불편한 구적마저 매끄럽게 넘어가 버리는 영화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처럼 보이지만 기실 무국적의 공간,이라며 <기생충>의 유일한 국적은 시네마,라고 선언한다. <설국열차>의 디스토피아와 별반 차이가 없는, 기능과 상징으로 지어진 집,이라고.


OTT 채널의 드라마 <파친코>는 일상의 소중함, 평범함의 귀중함을 '이야기'의 형태로 굳힌 것으로 평가하며, 이 모든 평범하고 안전하고 익숙한 요소들을 살뜰히 끌어모아 기적 같은 순간들을 창조한다,고 극찬한다.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3월의 라이온> <환상의 마로나>를 소개하기도 한다.


저자에게 울림을 주었던 두 편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터널 선샤인>으로 에필로그를 쓰며 20여 년간 영화의 중력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다,며 지금에 와서 보니 이 멈추지 않는 관계에 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도 딱히 어색할 것 같진 않다,고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영화에 딱히 관심도 애정도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내내 그걸 묻고 다녔다.

영화가 무엇인가요.

어쩌면 외부자의 시선으로 대상을 관찰했기에 가볍게 던질 수 있었던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매혹되었고, 각자 다르게 이야기하는 이 대상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렇게 나는 지난 20여년 영화의 중력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가볍게 던졌던 질문은 점점 무거워지고 중력은 점점 커진다.

새삼 다시 묻는다.

영화란 무엇인가.

답을 구하는 질문은 아니다.

그저 방향을 가리키는 등대와 같은 말이다.

지금 시점에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라는 정도다.

영화는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영화를 볼지 고르는 시간,

그날의 날씨와 나의 기분,

극장 의자에 앉아서 함께 보게 될 주변 사람들을 훑어보는 시간,

영화가 끝난 후 극장을 나서며 떠오르는 생각들,

서로 의견을 나누는 과정들,

잘 갈무리하여 글로 옮겨보는 것까지 '나의 영화'였다."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p.350) 



<2024.100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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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다 이 영화, 씨네21 1436호>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