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실 지음
소명출판 | 2005
<책 머리에> 중에서
아도르노는 "진실하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항하는 사유"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간에 '일치'라는 논리 하에 다양하고 특수한 현상들은
획일적인 관념의 틀 속에 종속시켜 버리는 것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폭력이다.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일탈의식은 '보편적인 것'에 의해 희생된 '특수한 것'들과의
길항 속에서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 끊임없이 상호주체성의 가능성을 향해 움직인다.
특히 식민지 지배와 전쟁이라는 역사적 상흔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한국적 현실에서
발전과 균형, 분명한 진보 이면에 숨겨져 있었던 '파편'들에 대한 관심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의 소산인 것이다.
식민주의나 포스트 식민주의에 대해서 보다 자본주의적 근대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천착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자본주의적 근대성이 특정한 장소와 시기에 있어서
식민형식을 취한다는 사실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내재되어 있다.
데리다의 말처럼 서구의 합리성, 근대성 자체가 인종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것이라면
'합리성'과 '인간본성'이라는 관념자체가 그러한 과정 중에 만들어진 '역사적 구성물'이라는 사실에 대한
면밀한 천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1950년대 한국문학론에서 전쟁과 관련하여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근대인식에 관한 논의는
위로부터 주어진 강박 관념과의 대결만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움직이는 교섭이 보여주는 갈등, 모색, 좌절의 편린이 잘 드러난 또 하나의 메타 텍스트다.
위에서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타자의 목소리를 배반하면서 상호 교섭의 접점에서 드러나는 봉합의 흔적,
즉 꿰맨 자국은 문화적 타자의 문제, 문학에 내재되어 있는 양가적 인식의 문제, 자기 동일성과 일탈 사이
긴장과 갈등을 보여준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도르노가 말하는 "비스듬한 것, 불투명한 것,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명명한 것들에 대한 관심은
주체와 큰 타자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데도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