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왈드하임 엮음 | 김영민 옮김
조경 | 2007
<서문 중에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은 경관이 현대 도시 계획의 기본 구획 단위로서의 건축을 대체하고 있는
오늘날의 도시적 상황에서 진행 중인 학문적 재편성에 대하여 말한다. 학문적 영역을 넘어,
여러 분야에서 경관은 현대 도시를 드러내는 렌즈가 됨과 동시에 이를구축하는 매체가 되고 있다.
이 책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생산 영역의 목표와 그 기원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열네 명의 작가들의 글을 모았다. 이 책과 이 책이 구상하는
'새로운 언어'는 현재 도시에 대한 논의에 있어 급변하는 경관과 관련된 상황을 기술하고자 한다.
이 책이 기록하는 새로운 담론은 지난 몇 년간 많은 건축가, 조경가, 도시계획가들의 작업 속에서 발견되는
경관에 대한 새로운 관심에 대해서 말한다. 따라서 이 논제들은 전통적인 학제나, 전문적 영역, 그리고
비평적 범주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새로운 사조가 주는 충격을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대상과
언어에 대한 최근까지의 연구와 실천을 되돌아보는 다양한 글들로 이루어진다.
<본문 중에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두 번째 주제는 수평적 표면과 지평면, 그리고 움직임의 '장field'과 관련된
현상에 대한 것이다. 이 표면은 보도에서부터 거리, 그리고 더 나아가 도시 표면의 전 기반시설적 매트릭스를
포함하는 다양한 스케일이 고려의 대상이 될 때 도시의 장을 형성한다. 이 주제는 지붕과 지면이 하나로 동일해지는
표면적 연속성에 대한 오늘날의 관심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는 분리된 조경과 건축을 통합시키는 데 있어
분명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기원은 모더니즘 건축과 계획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비판에서 찾을 수 있다.
찰스 젠크스를 비롯한 포스트모던 건축 문화의 진영에서 시작한 이러한 비판은 모더니즘이 '의미 있고'
'살만한' 공공 영역을 창조할 수 없음을, 집합적 의식의 역사적 구조체로서의 도시를 수용할 수 없음을, 다양한
의견과 의사 소통할 수 없음을 고발한다.
알렉스 월Alex Wall이 "사회적 도구들의 장"이라고 명명한 OMA의 라 빌레뜨 계획안은 지난 20년 동안 조경 디자인을
논쟁의 중심으로 만들었다.(이때 조경 디자인은 더 이상 모방적인 요소와 상징적 이야기로 가득 찬 완결된 미학적
구성이 아니라 프로그램적 가능성을 위한 다양한 기반시설을 설치하는 작업이 된다.) 쿨하스가 생태적인 지식이
없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1999년 제임스 코너는 OMA의 라 빌레뜨 공원 안이 "진정한 생태적인 조경"을 표상한다고
극단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이 안이 "완성된고 종결된 작업의 축조가 아닌, 다양성의 관계가 발생하고, 접속되고,
연결되고, 차별화될 수 있는 촉매적 틀로서 '기반', '인자', '전략', '과정'을 디자인한 조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월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스트의 디자인 전력이 "사회적, 생태적 인자로서 기능하면서, 물리적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변화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생태적인 틀을 벗어나서 그는 모더니즘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경은 아마도 생태적인 모더니티, 낭만주의와 미학으로부터 자유로운 생태학을 의미하는 자신만의 모더니즘을
아직 갖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쿨하스의 생태적 소양이 의심스러울지라도, 건축이 원해왔던 대로 대상 그 자체를 넘어서
사물 간의 관계를 읽을 수 있다면 그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스트들은 생태적이라 하겠다. 대상보다 장場을 우선시하면서 건축가는 이론적으로 그리고 영역적으로 이제 조경가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혹자는 건축가가 경관을 다른 모든 기반시설 요소나 네트워크를 책임지는 기반시설로서 여기는지, 아니면 단순히 야수적인 도시의 역학으로 전 지구를 장악하는 일거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얻어내고자 경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지 의심스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