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건축의 위대한 유산
에이다 로이즈 헉스터블 지음 | 이종인 옮김
을유문화사 | 2008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은 20세기 미국이 낳은 위대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의 삶을 작품과 생애 양면에서 입체적으로 검토한 가장 최신의 라이트 전기(2004)이다.
가장 최근의 전기답게 그동안 나온 라이트 전기와 연구서를 폭넓게 참고하면서 문제 많은 자서전의 허구를 하나하나 벗겨나간다. 그의 거짓 나이, 부풀려진 가정환경, 부모의 이혼 사유,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대학도 중간에 그만둔 학력의 위조, 뻔뻔스러울 정도의 이기심, 허영에 가까운 오만함 등을 여러 각도에서 세밀하게 분석한다.
이 책의 저자는 라이트의 여러 거짓된 생활을 아주 객관적인 눈으로 조망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라이트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해서는안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머리말 중에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는 두 개의 삶이 있다. 하나는 그가 지어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실제로 산 것이다. 독불장군식 천재로서의 건축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당하여 곤경에 처하고 오해받는 외톨이, 보통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상적인 개혁가로서 "세상에 맞서는 진실"의 깃발을 높이 든 그가 있다. 말하자면 황금시간대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만한 성격과 인생 시나리오를 가진 셈이다. 라이트는스스로 그렇게 되기를 원했고 또한 실제로 그렇다는 확신에 입각하여 여러 가지 사실들을 조작했다. 그가 자신의 삶이라고 남들에게 보여준 것 자체가 하나의 창조적인 행위였다.
그는 19세기의 견해를 고수했는데, 특히 에머슨과 러스킨이 주장한 낭만적 도덕신조를 완고하게 고집하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작품에 있어서만큼은 당대의 모든 관습으로부터 완벽하게 떠나왔다. 도대체 20세기 초에 이미 한물간 철학을 일생 동안 간직하고서 현재(21세기)까지도 의미가 있고 동시대적이며 약동적인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실들만으로 밝혀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수정되거나 조작된 삶의 모습들 모두가 다 필요하다. 그래야만 신중하게 꾸며낸 태도나 교묘하게 수정된 사건들 뒤에 숨은, 재주는 많지만 실수가 지나쳤던 한 인간의 전체 상을 얻을 수 있다. 성격에 의해서거나 아니면 상황적 필요에 의해서 라이트는 교묘한 술책에 자주 의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술은 그의 인생과 분리된 별개의 것이 아니다.그의 건축예술은 부정할 수 없고 또 그 지속적인 성실성을 의심할 수 없다. ... 결국 예술은 진실이다. 그리고 인간의 진실은 그의 작품에 들어 있다. 건축물은 예술가의 깊은 확신과 진정한 표현력을 전해준다. 거기에는 어떤 거짓도 개재할 수 없다. 건축물은 삶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이 책은 건축과, 더 나아가 우리가 건축을 보는 시각을 영원히 변화시킬 목적으로 그가 그토록 눈부시게 융합한 예술과 인생의 흐름을 탐구하려는 시도이다.
<책 속에서>
버넘은 1893년 세계박람회의 화이트 시티를 주도한 인물로 시카고의 유명한 건축가였다. 버넘은 라이트가 정식으로 건축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파리로 가서 미술학교의 3년 과정을 이수한 다음 로마에 있는 미국 아카데미에서 다시 2년 동안 배울 것을 제안했다. 버넘은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라이트의 아내와 아이들을 그동안 돌보겠다고 했다. 라이트가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로 자신의 회사에서 동업자로 일할 것도 약속했다. 이것은 놀라운 제안이었으며 일류급의 경력을 보장하는 것이기도 했다.
라이트는 거절했다. ...성공이 가장 중요했다면 그는 버넘의 제안을 즉각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는 거만할망정 자신의 성격에 충실했다. 라이트는 완전히 자기자신과 일과 이상을 믿었다. ...그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적합하다면 거의 무엇이든지 합리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버넘의 제안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신념과 그가 구상하던 모든 것들을 시험하는 것이기에 거절했다.
라이트는 버넘이 중요하게 여기는 고전적인 전통이 자신의 창조성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나중에 한 말에 의하면,
"...나는 차라리 실패자가 되더라도 자유로운 편이 낫겠다. 나는 출발했을 때처럼 그대로 간다. 나는 태생으로, 훈련으로, 확신으로 이미 망쳐졌다. 나는 파리에 갈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제안대로 다 된 후의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