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 지음 | 박홍규 옮김
아트북스 | 2003
누구나 그 이름을 알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화가.
누구나 천재로 숭배했으나 영광 속에서 홀로 쓸쓸했던 화가.
유럽의 변방인 스페인에서 온 '침입자'이자 '고상한 야만인',
진지한 사회주의자였던 피카소의 진면목을 심리적,문화적,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한 우리시대의 고전.
<책 속에서>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가는 당대 시대정신을 선구적으로 보여준다. 고흐의 무서운 운명,
렘브란트의 끝없는 고립감은 동시대인들이 경험한 고독과 절망을 새롭게 암시한 것이었다.
거대한 전환기의 들뜬 희망을 호흡했던 입체주의 시기와 파시즘에 항거했던 스페인시민전쟁은
피카소의 생애에서 '위대한 예외'였다.
하지만 부르주아 세계에 투항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빵이 아니라 돌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영혼을 의탁할 민중이었으나 정작 그를 둘러싼 것은
아첨꾼들뿐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제를 부여할 민중을 찾아 사회주의자가 되었으나
이번에는 무관심과 교조주의라는 철벽에 부딪혔다. 그는 결국 홀로 남겨졌다.
피카소의 예는 예술가가 자신의 개인적인 천재성 안으로 도피했을 때 직면하는
무기력과 정체를 가슴 아프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결코 냉소적이지 않았으며,
핵의 위협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북돋우기 위해 거듭거듭 자신의 명성을 빌려주었다.
우리는 그를 결코 낮게 평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