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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12-03 23:53:11
조회: 6,172  
제목 고갱, 타히티의 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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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b0edb0bb.jpg 데이비드 스위트먼 지음 | 한기찬 옮김
한길아트 | 2003
 
 
 
 
 
 
 
거침없이 신화를 향해 달려가는 불의 수레바퀴 같은 인물... 그런 전설적인 인물이 늘 그렇듯이
고갱도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고 붓을 들어 그 미래를 창조해낸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그는 천재였으며 여느 천재답게 자신의 천재성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천재성을 발휘하기에
적합한 장소까지 창조했다.
 
스위트먼의 이 전기는 전혀 낯선 고갱을 우리 앞에 제시한다.실제로 살았던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현대 전기의 경향('동상 허물기'로 표현되는 새로운 흐름은 거의 모든 영웅적 인물들에 대한
'새로 쓰기 작업'인데)에 충실한 이 책 역시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고갱에 대한 허구를 철저하게
해체하면서, 전혀 새로운 고갱, 기회주의적이면서도 자신의 본능에 충실했던 인간, 19세기식 가족의
굴레로부터 도피한 남자, 너무나 뻔한 파멸을 향해 치닫는 탁월한 재능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이렇게 재구성된 인간은 신화 속의 인물과는 거리가 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꾀죄죄한 한
중년 사내의 모습을 하고 빈한에 떨어져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데 골몰한다.
 
동시대인들의 그림을 훔치고 하나하나 정복했으며, 그런 다음에는 가차없이 내버렸다. 피사로, 세잔,
에밀 베르나르, 쇠라, 반 고흐, 마네, 드가...들이 그에 의해서 밀려나거나 잊혀지거나 배신당했다.
 
우리가 접하게 되는 것은 경악할 만한 인간의 모습, 어쩌면 우리가 이제껏 품고 있던 인간에 대한
모든품위와 가식을 벗어던져야만 비로소 올바른 인간의 전형을 제대로 파악하게 되리라는 소름끼치는
진실일지 모른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책 속에서>
화려한 명성을 얻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쇠라의 점묘법이 나온 뒤로는 여간해서
비평가들을 놀라게 만들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독창적인 주제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드가에게는 무희가 있었고, 르누아르와 모네에게는 뱃놀이하는 사람들과 서민 카페가 있었지만,
신도시와 급성장하는 교외지에 대해서는 이미 울궈먹을 만큼 울궈먹은 상태였다. 현대 생활에 대한
기발한 관점에 물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시야를 더 먼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긴밀한 파리의 미술계로부터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므로 거리가 문제였다. 자칫했다가는 너무도 쉽게 잊혀져버릴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너무
외진 장소일 경우에는 물감이라든가 생활필수품을 구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고갱이 생각하기에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상당히 문명화된 식민 도시로부터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열대의 항구일 것 같았다. 그런 곳에서라면 물자를 구하고 파리와 연락을
취할 수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