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아녜스 바르다의 말 > 모도책장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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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9-02 20:47:13
조회: 1,473  
제목 [book] 아녜스 바르다의 말
 

본문

 
삶이 작품이 된 예술가
집요한 낙관주의자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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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 바르다, 제퍼슨 클라인
오세인 옮김
마음산책 | 2020
 
 
 
 
<차례>
 
서문 | 제퍼슨 클라인
 
5시부터 7시까지의 바르다
모든 창작자는 매개자다
세속적 우아함
땅속을 흐르는 직관의 강
여성은 사랑만 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나, 영화 만드는 사람
삶을 통해 구축되는 영화
바다는 그 어디도 아니라서
시간은 혈액의 순환을 닮았어요
다양한 우연의 순간들
저는 잊힐 거예요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타로 카드 인터뷰
영화는 죽고 싶어 하지 않아요
개척자는 언제나 모험을 추구해요
줍는 자의 소박한 몸짓
새로운 친구를 소개하듯이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작업
영화 만들기와 직관을 향한 애정
다들 평화롭게 지내면 좋겠어요
 
 
 
 

씨네 21 1201호에는 아녜스 바르다의 부고 기사가 실렸다.
88살에 만든 마지막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선보이고
2019년 베를린영화제에서 명예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지 불과 한달만에.
 
그가 60여년간 여러 매체와 행한 스무 편의 인터뷰를 엮어 <아녜스 바르다의 말>로 독자에게 소개된다.
 
책에 수록된 인터뷰들은 실질적으로 편집이 가해지지 않았다,고 제퍼슨 클라인은 서문의 말미에 쓰고있다.
그 결과 바르다의 언급들 가운데 일부는 반복되어 등장하기도 하는데,
독자들에게 보다 온전한 모습의 텍스트를 제공하는 데 그 의미를 둔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반복들이
감독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무언가,
그의 지속적 관심사를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확신하며.
 
어린 시절, TV에서 자주 보던 영화 중에 <쉘부르의 우산>을 빼놓을 수 없겠다.
이 영화의 감독 자크 드미가 바르다의 남편이었다는 사실은 <아녜스 바르다의 말>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된다.
 
1954년 처음으로 만든 영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으로 단번에
누벨바그의 대모 자리에 오른 감독의 남편이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영화의 감독이라고? 라는 의아함이 앞서지만
<아녜스 바르다의 말>을 읽다보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로서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며 평생을 함께한 동반자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누벨바그의 감독들.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프랑수아 트뤼포, 에리크 로메르는 모두
앙드레 바쟁의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영화 일을 시작했는데,
바르다의 첫 영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의 편집을 알렝 레네가 맡게 된 건 바르다에겐
커다란 행운이었다,고 제퍼슨 클라인은 단언한다.
레네가 바르다를 이들에게 소개해 주었고
저예산, 최소한의 스토리 라인, 신사실주의, 표현적 촬영기법과 같은 요소 등
누벨바그의 전형들이 바르다의 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짐작하게 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에피소드로,
고다르를 찾아간 바르다가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음에도 만나주지 않는 친구로 인해 당혹해하며 커다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녜스 바르다의 말>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상황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친구의 성정을 잘 알고있는 바르다는 이해한다는 입장을 전한다.
 
바르다는 자신이 만들어낸 단어로 '시네크리튀르'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는데 영어로는 cinewriting, 우리말로는 영화쓰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
가령 당신이 작곡을 한다면 누군가
그걸 연주해줄 수 있겠죠.
악보는 하나의 기호니까요.
 
건축가가 세밀하게 설계를 하면
그 도면으로 집을 지을 수 있듯이요.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이 찍어줄 걸 기대하면서
시나리오를 쓸 수 없어요.
시나리오는 영화를 쓰는 방법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
영화의 움직임, 관점, 리듬, 그리고 편집 작업은
작가가 문장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단어를 선택하고, 부사의 개수를 신경 쓰고,
챕터의 사용을 고려하는 등의 방식과
거의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돼요.
 
글쓰기에선 이러한 것들을
스타일이라 부르죠.
 
영화에선 스타일이
시네크리튀르예요.
"
 
 
1985년에 만든 영화 <방랑자>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국제평론가상과 조르주 멜리에스상 등을 받으며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히지만,
그 후로 10여년간 상대적으로 적은 활동을 하다가,
72세의 나이에 발표한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로 다시 주목받으며 삶을 이어간다.
 
자신은 "철학적이지도, 형이상학적이지도 않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감독이지만
소르본 대학에서 배운 가스통 바슐라르 교수를 언급하며
그를 만난 행운으로 영화 일을 하게되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 이야기에만 집중하지 말고,
작가가 언급하는 물질적 대상들도 연구하라'는
바슐라르 교수의 가르침으로 박물관 큐레이터가 되고자 했던 자신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1974년 <위민 앤드 필름> 1호에 실린 인터뷰는
여성 영화감독으로서 활동하면서 지내온 시간들을 돌아보는 내용인데,
자신이 처음 영화를 시작한 19년 전에는 여성운동이라는 게 없었던 시절이라고 회고한다.
 
많은 젊은 여성들이 자신에게 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며
힘든 현실에 대해 걱정하면,
 
"나는 한 인간이고, 영화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힘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만일 사회가 여성에 적대적이라면 하나하나 조금씩 맞춰 나가자. 하지만 무언가를 시작하는 시점에 이런저런 걱정을 너무 할 필요는 없다."는 조언을 전해준다.
 
"저는 그저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라며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떤 제약을 받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첫 영화를 만든 이래로 감독은 계속해서 자신만의 영화를 스스로 제작하려는 의지 혹은 욕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인터뷰어의 생각에는,
 
"
그게 의지나 욕망의 문제일까요?
그건 필요에 의한 거예요.
...
중국 식당에 갔을 때 포춘 쿠키를 열어보았더니
그 안에 이런 메시지가 들어 있었어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을 보라.'
 
이게 저 스스로 제작에 나서는 이유죠.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요.
"
 
 
완성된 자신의 작품에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시나리오만으로는 제작비를 지원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영화의 중심지 프랑스에서?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만들어요.
그림을 그리듯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상업영화만을 선호하는 세태를 꼬집는다.
 
돈도 없이,
힘도 없이,
보답도 없이
늘 투쟁해왔다,며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존중함을 자신있게 말한다.
싸워서 얻어낸, 싸울 만한 가치가 있었으므로.
 
 
"
영화를 글로 쓴다는 건 그 자체로 불가능한 일이죠.
이런 이유로 저는 이제 더 이상 시나리오 쓰는 걸 거부해요.
저는 종이 두 쪽에 모든 것을 적어요.
그리고 하나의 도전이라 생각하면서 영화 작업에 임하죠.
이렇게 하게 된 이유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실망을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완성도 있게 쓴 시나리오가
다양한 행정적 이유들로 거절이 되곤 했죠.
시나리오는 돈을 주면 언제든
살 수 있는 거니까요.
돌아보면 저는 모든 사람에게 거절당하기 위해
살아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어요.
작년으로 영화 인생 30년을 맞이하면서 결심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온전히 자유롭게 하기로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제출하려고
시나리오를 쓸 생각이 없어요.
이제부턴 영화를 만들든가
만들지 않든가
둘 중 하나예요.
이제부턴
저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나갈 거예요.
"
 
 
자신 안에는 누구도 만질 수 없고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긴 세월을 지내오면서 이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평온한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
저는 모든 것에 책임지는 걸 선호해요.
결코 다른 누군가의 프로젝트를 맡아서 하지 않아요.
다른 누군가의 시나리오를 받아서 하지 않아요.
대단하진 않지만,
저는 제 작품을 해요.
"
 
 

가끔은 이런 영화를 보는 것도 괜찮죠.
드라마도 없고,
사건도 없고,
범죄도 없고, 총도 없고,
정치도 없는 영화.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
(P.401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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