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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12-01 13:48:58
조회: 6,147  
제목 Art and fear
 

본문

art_fear1.jpg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데이비드 베일즈. 테드 올랜드 지음 | 루비박스
 
 
 
 
 
 
 
이번 학기에 1학년들에게 설계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재능과 노력, 개념이라는 것들, 열정,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설계에 대한 두려움 등등.
건축이 온전히 예술이랄 수는 없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공감이 가는 글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끊임없이 노력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 막 설계의 첫걸음을 떼는 학생들은 저마다 많은 고민이 있는 듯이 보인다.
설계가 적성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재능이 있지만 너무 깊은 고민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
촉박한 일정에 호흡을 맞추기 어려운 경우.
문제는 결국 자신의 의지이다. 궁극적으로 건축가가 될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는가의 문제.
가고 싶은 곳은 저 먼 곳에 있지만 현실은 척박하기만 하다.
주변의 건물들 중 과연 몇 퍼센트가 고민끝에 나온 것일까.
심정적으로는 1%도 채 되지 않는것 같다.
어떠한 경우에도 의지를 흐뜨리지 않을 용기와 열정이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계속 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해에만  다섯개의 현상설계, 지금까지 아홉 번의 현상설계를 참여하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들과 고민들, 좌절과 기쁨을 겪으면서 계속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걸어온 것 같다.
30년 후에 커피잔을 들고 '나도 한때는 건축가가 되려 했지...'라고 하소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는 포기만은 하지 말아야겠지.
 


이 책은 예술창조에 관한 것이다. 모차르트 작품 같은 위대한 예술일 필요는 없다. 통계적으로 모차르트 같은 인물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훌륭한 예술 작품은 항상 새로이 탄생한다. 예술창조를 통해 예술가들이 부딪히는 문제들은 흔하고 익숙한 것들이다.  실생활에서 예술 작업을 하며 만나게 되는 문제들과 매일 맞서 싸워나가는 예술가들이 저자이다.

작업실이나 교실에 앉아 있을 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 아니면 카메라를 앞에 두고 씨름을 벌이고 있는 동안에 느끼는 점들에 관한 것이다.  <서문 중에서>



이 시대에 예술을 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에 맞선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이러한 회의들을 제쳐두고 자신이 해놓은 것을 직시함으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내는 것이며,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작품 그 자체 내에서 자양분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신앙의 세기도, 진리와 확실성의 세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결점 없는 존재는 예술을 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결점과 나약함이 종종 작품을 하는 데에 장애가 되긴 하지만, 역으로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예술창조는 하고자 하는 것과 해낸 것 간의 피할 수 없는 간극을 그대로 보여주어 심기를 불편케 하는 과정이다.



사실, 예술작업이 창작자 자신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의미 있는 예술창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창조의 경험은 오직 창작자 자신에게만 중요하다.

예술가의 일은 작업하는 법을 배워 예술작품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예술가 대부분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작품을 창조해내는 데에 자신들 시간의 일부를 (어떤 예술가들은 전부를) 쓰고 있다.



사람들의 무관심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냉혹한 진실이다.

실패한 작품들조차 필요하다는 것. 예술가는 작품을 만듦으로써 예술창조의 방법을 배우며, 이렇게 만든 수많은 작품들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자신의 작품이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예술작업 주기에서 반복되는, 정상적이며 건강한 일반현상이다. 그런데 새로운 구상에 집중하여 작품을 시작해 진행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초심은 사그라져 버리고, 결국에는 계속 나갈 가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 마련이다.



아이디어를 표현해 나가다가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버리면 거기에서 멈추어 붓을 놓는다. 그리고 30년 뒤에 커피 잔을 들고 자신도 젊어서 한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노라고 누군가에게 고백한다. 포기는 중단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단은 늘 하는 것이지만 포기는 그것으로서 마지막이다. 포기한다는 것은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작하고 또 시작해야 하는 것이 예술인 것을.



성공은 빈번하고 쉽게 침체로 급변한다. 이러한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목표가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개개의 예술 작품들을 미완성인 채 두었다가 다음 작품에서 이어나가야 하며, 더 큰 목표를 가지고, 다음 목표의 씨앗을 항상 품고 있어야 한다.



90살의 고령에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1959,미국의 건축가)는 설계를 멈추지 않았고, 피카소의 붓도 꺾이지 않았다.



할 수 없다, 잘 할 수 없다, 다시 할 수 없다, 진정한 예술가가 되지 못한다. 훌륭한 예술가가 못된다, 재능도 없고, 할 말도 없다 등등. 예술가와 작품 사이에 놓인 선은 기껏해야 가느다란 것이어서, 예술가는 당연히 이 선을 느끼지 못한다.



예술가들이 중도 포기한 예술가들과 다른 점은 이러한 두려움에 도전하여 멈춤 없이 밀고 나간다는 점이다.



“첫 문장을 시작하기가 그토록 힘든 것은 그 첫 문장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나머지 모든 것은 그 문장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아울러 일단 첫 두 문장을 적게 되면, 다른 선택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만다.”

조안 디디언(Joan Didion,1934-,미국의 여류 저널리스트,소설가)



찰스 임스(Charles Eames,1909-1978,가구디자이너)는 자신이 가진 에너지의 1퍼센트 정도만이 구상에 할애되며, 나머지 99퍼센트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전 과정에서 그 구상을 지켜나가는 데에 소모된다고 하소연하곤 했다.

결국, 상상 속의 작품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지금, 눈앞의 작품은 그렇지 않다. 오늘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바로 앞에 놓여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개발시켜 나가는 것이다.



타자기가 등장하기 전에 살았던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여덟 번이나 고쳐 썼으며 최종적으로 인쇄되어져 나올 때도 여전히 교정쇄를 수정하고 있었다.



마무리 상태에서 아주 훌륭해 보이는 예술 작품도 처음에는 완전히 쓰레기였을 수 있다.

... 예술은 그 끝을 알지 못하면서 문장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삶에서 확실성만을 요하는 사람들은 위험하고 파괴적이며 복잡하고 불확실한, 그리고 암시적이며 임의적일 수밖에 없는 예술을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한 다양한 감각과 어떻게 그것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 그리고 예술 창조과정에서의 오류와 발견들을 포용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면 된다.



자신에 대한 두려움.

“적을 만나고 보니, 바로 나 자신이었다.”

포고(Pogo, 미국의 만화 캐릭터)



자신의 개성이 살아 숨쉬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 밖에는 없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무엇을 하느냐이지, 그것이 어렵냐 쉽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