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 모도책장new

본문 바로가기

작성일 2007-10-08 16:46:48
조회: 5,907  
제목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본문

dscf0004c6edc1fd.jpg  영화관 옆 철학카페 - 타르코프스키편
  김용규 지음 | 이론과 실천 | 2004
 
 
 
 
 
 
 
 
 
 
 
 
 
 
 
 
타르코프스키는 평생에 걸쳐 단 7편의 작품만을 만든 영화감독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두 걸작의 반열에 올라있다.
모든 영화를 관통하는 감독의 철학은 하나로 모아지는데,
'천공을 어깨로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의 위대함은 그토록 오랫동안 천공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포기하지 않고 피곤에 지쳤을 때조차
환멸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일을 계속한다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똑같은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일곱 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감독은 일종의 철학자가 되었을 때만 비로소 예술가가 되며, 그의 영화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으며, 영화를 감상하는 일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일"임을 분명히 했다.
 
 
이 책은 일곱편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을 각각 다른 철학적 바탕으로 해석한 글이다.
<이반의 어린 시절>은 브르통의 '초현실'을 통해 이루어지는 마르쿠제의 '유토피아'로,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하르트만의 '신념'으로, 키에르케고르의 '믿음'으로,
<솔라리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속에 존재하는 하이데거의 '양심'으로,
<거울>은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과 싸우는 라캉의 '거울 이미지'로,
<잠입자>는 플로티노스의 '비행'을 위한 칸트의 '도덕'으로,
<노스탤지어>는 프루스트의 '회상'을 거쳐 플라톤의 '에로스'로,
<희생>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구원'을 위한 프롬의 '존재양식'으로 이해한다.

그 중에서도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으로 해석한 <거울>에 관한 글이 요즈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욕망이란 타자에게 인정받기 위한 욕망이라는 것을 간파한 헤겔은, 주체는 타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이미지를 타자에게 강요해야 하는데, 이 타자 역시 자신의 이미지를 인정받으려는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체와 타자 사이에는 '죽음을 각오한 투쟁'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 투쟁은 둘 중 하나가 죽기 전에 멈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정은 살아 있는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투쟁은 결국 어느 한 쪽이 인정받으려는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고
상대에게 복종할 때 끝난다. 이때 둘 사이에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성립되는데, 이때부터 주인이
노예를 부리기 때문에 노예는 일을 하고 주인은 그것을 소유.향유하게 된다.
 
그러나 주인의 승리는 겉보기처럼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이들간에는 서로의 입장을 부정하는 변증법적
관계가 성립된다. 주인은 비록 인정을 받았지만, 그는 점점 더 노예에게 의존하게 되어 자신의 노예에게
예속되어간다. 반면에 노예는 일하는 과정에서 자연을 극복함으로써 자신을 고양시키고 격앙시킨다.
결국 노예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노예에게 의존하고 있는 주인과는 달리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증법적 발전을 통하여 역사 발전은 결국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일하는 노예'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주인은 '실존적 무기력'에 빠지는 한편 노예는 자신의 신분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하고 진정한 만족을 얻을 
가능성을 획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