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마 켄고 지음 | 임태희 옮김
안그라픽스 | 2010
<차례>
서론 20세기는
1장 흘러가는 물 - 수평으로 그리고 입자로
2장 돌 미술관 - 모더니즘적 단절의 수복
3장 쵸쿠라 광장 - 대지에 녹아드는 건축
4장 히로시게 미술관 - 라이트와 인상파 그리고 표층적 공간
5장 대나무 - 그레이트 월 코뮌의 모험
6장 안요지 - 흙벽의 민주화
7장 기로잔 전망대 - 자연과 인간의 경계
8장 와시 - 유연함에 대한 도전
결론 자연스러운 건축
<한국어판 '자연스러운 건축' 출간에 즈음하여> 중에서
나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자연관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관'이라는 것은 사람과 자연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며
사람의 생활도, 사람이 만드는 건축도, 자연관과 연결되어 있다.
... 그러므로 나는 일본적인 자연관, 한국적인 자연관이라는 정의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각각의 장소, 거기에 사는 사람이 주요 관심 사항이다.
장소와 장소, 사람과 사람과의 영향에도 관심을 갖는다.
20세기 초에는 국제화를 추구하는 건축이 진행되어 왔지만, 사실 건축이라는 존재는
국제적일 수가 없으며, 국가라는 광범위한 단위에 귀속될 리가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개인이라는 고유한 존재이고,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활을 담는 그릇인 건축 또한
특정 장소에 한정된 단독의 존재이다. (2010년 7월 쿠마 켄고)
<본문 중에서>
자연스러운 건축은 자연 소재로 만들어진 건축이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콘크리트 위에 자연 소재를 붙인 건축은 더더욱 아니다.
어떤 것이 존재하는 장소와 행복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
우리들은 그 자체를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자연과의 관계성인것이다.
자연스러운 건축은 그것이 지어지는 장소와 행복한 관계를 가지는 건축이다.
20세기는 존재와 표상이 분열되고 표상을 둘러싼 기술이 비대해진 결과, 존재(생산)는 극단적으로 무시되었다.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가'가 아니고 '어떻게 보일지' 그것만이 주목받았다.
진정한 풍요로움을 찾고 싶다면 건축을 어떻게 생산할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장소를 재료로 하고, 그 장소에 적합한 방법으로 건축을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산은 장소와 표상을 하나로 엮어 낸다.
장소는 단순한 자연 경관이 아니다.
장소는 각양각색의 소재이며, 소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생활이다.
생산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소재와 생활과 표상이 하나로 꿰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로 자연스러운 건축이 태어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가장 급진적인 건축은 사실은 자연에 뿌리를 내린 건축'이라고 단언했다.
가장 필요한 것은 가슴을 펴고 100퍼센트 당당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다.
현실적인 인식밖에, 그 겸허함 밖에, 건축의 희망은 없다.
그 마음에서 건축을 시작하는 것이 진실된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건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