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봤을 때,
진짜 재수없는 영화를 봤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어두운 이야기를 감당하기 어려웠다고나 할까...
이제 <해변의 여인>까지 보고나니, 홍상수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짐작이 가는 듯 하다. 영화 속 감독(중래)의 친절할 설명과 함께 그림까지 그려줬으니 말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한참을 고민하기도 했는데, 이제야 속이 후련한 느낌.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지를 말하는
장면들의 디테일한 연출은 어떤 개그코너보다도 재미있다.
<오! 수정> <극장전> <해변의 여인>에 공통으로 보이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좋은 이유는,
너무나 리얼한 풍경을 담아내는 영상때문이다.
아름다운 화면으로 채워진 영화는 그 나름의 이미지를 보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현실과는 참으로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은, 아무런 치장없는
그저 우리가 항상 보는 그 길, 그 건물, 그 바닷가, 그 술집, 그 식당, 그 무엇무엇들이다.
건축가로서는 당연히 고치고 싶은 풍경들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인 것을.
중래 : 너 이러는 거나, 내 순결의식이나 다 이미지잖아
남들이 심어논 이미지를 우리가 반복하고 있는 거잖아
봐봐.. 이게 실체라고 생각을 하자구.
이게 계속 변하면서 무한대 굴곡이 있잖아.
여기서 사람들이, 여기 여기 여기 이 포인트에 계속 시선이 가며는 환기되는 이미지가 생기게 돼요, 이런 식으루.
... 이 세 포인트가 셑트가 되는 순간에, 이 기존의 불결한 이미지에 딱 맞아 떨어지는 거거든. 그럼 실체는 없어지고 이 이미지만 남게 되는 거거든.
... 그러니까 계속 노력을 하다 보며는 이 상투적이고 사악한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을거 같애. 깨뜨릴 수 있을거 같애. 그러니까 우리는 다른 포인트를 같이 볼 수 있게끔 노력을 해야 될 거 같애. 응? 무슨 말인지 알겠어?
문숙 : ...훌륭하다, 자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중래 : 이렇게 싸우는 거야, 지금.
문숙 : 이거... 정말 좋은 생각인거 같애.
중래 : 그래? ㅎㅎㅎ
문숙 : 똑똑하구나, 중래씨
중래 :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