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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4-11 12:17:07
조회: 6,516  
제목 [film] play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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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자크 타티
주연 | 자크 타티, 리타 메이든
제작국가 | 프랑스, 이탈리아
상영시간 | 126분
개봉일 | 2005년 6월 24일
 
1959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1965년 르 코르뷔지에, 1969년 미스 반 데어 로에를 마지막으로,
근대건축 거장들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근대건축이라 말할 때, 근대와 현대의 구분 시점을 장용순교수(홍익대)는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의 초반을
전환 지점으로 분석한다.
어떤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현대 건축의 시발점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1956년에 열린
열 번째 국제 근대 건축 회의 (CIAM)를,  또 다른 사람들은 68운동과 로버트 벤투리의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1966)이 출간된 시기를 현대 건축의 시발점으로 잡는다. (현대건축의 철학적모험, 미메시스, 2010)

영화를 보고 건축을 말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영화 중의 하나가 자크 타티의 영화들이다.
십수년전 <나의 삼촌>을 봤을 때, 근대 건축을 화면에 옮겨 놓은 듯한 화면 속에서
영화의 내용은 근대 건축을 비판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열심히 근대 건축 거장들의 작품들을 탐구하던 때라 그런 내용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월이 흘러 다시 <플레이타임>을 보니, 감독의 의도가 근대 건축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으로 읽힌다.
 
피터 블레이크의 <근대 건축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책장에서 다시 꺼내 보았다.
그 중 한 챕터인 '초고층건물의 환상'을 보자.
 
     초고층건물은 분명히 가장 잘 볼 수 있는 근대건축운동의 상징이다. 그것 없이는-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했던 기술상의 혁신없이는-금세기초의 수십년 사이에 발전된 도시설계의 새로운 개념은 대부분 빛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근대건축의 거장들이 극히 명료하게 인식하였듯이, 수직 도시를 건설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집짓기 놀이를 꿰 맞추듯 도시 건물의 뼈대를 짜는 일이다. 수직의 기둥과 보로 짜되, 그 사이에는 넓은 공간을 내어, 지면층이거나 그 밖의 모든 층에서 바닥면적의 손실이 없도록 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근대건축가의 눈에 가장 적절하게 보이는 재료는 항상 유리였다. 그 이유는 근대건축운동의 "순수주의적" 성향에서 찾을 수 있다. 순수주의자에게 있어서는,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요소-기둥과 보-는 강하고 튼튼하게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게를 받지 않는 표피, 즉 커튼월은 마찬가지로 말끔하게 "표현"되어야 했다. 다시 말해서, 옥내와 옥외를 구분하기만 하고 구조적인 힘은 전혀 없음이 확연히 드러나는, 단순한 막, 일시적인 가리개로서 표현되어야 했다.
유리는 그런 의도를 완전히 충족하였다.
.....
강철이나 콘크리트 뼈대로 짓고 유리표피로 덮은 초고층건물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내부환경을 가질 수 없다. 더우기, 근대기술의 신화보다 오히려 구조적 사실과 관련될 수 밖에 없는 이유 때문에, 그러한 구조로 된 초고층건물은 옛부터 있던 주위의 도시적 짜임새를 침식하거나 소멸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근대건축 운동의 이상-'빛나는 도시'-은 사실상 우리의 도시적 유산의 불가피한 파괴자임이 드러났다.
 
1958년에는 뉴욕에 미스가 설계한 시그램빌딩이 세워졌다.
플레이타임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축가와 그의 작품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royal garden의 왕관들을 보면서 미스의 crown hall(1950-1956)을 연상한다.
 
첨단기술로 된 사무소에서 관리인은 기계 조작이 서툴다.
투명유리 간막이로 된 대기실에 윌로(자크 타티)가 들어가 있을 때 그곳은 동물원처럼 보인다.
같은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작업공간은 바로 옆에 있는 파트너조차 찾을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이다.
출입문은 사무실이건 주택이건 너무나 투명하여 나가는 곳을 알 수 없다.
가구의 모서리는 너무 날카로와 웨이터의 옷을 찢는다.
 
미국이나, 멕시코나, 스웨덴이나 똑같은 모양의 건물로 도시를 광고하지만
미국에서 온 관광객 클라우디아가 흥미로워하는 풍경은
말끔한 건물 앞의 허름한 노점상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이며, 투명 유리에 비친 에펠탑이다.
 
영화의 분위기가 바뀌는 지점은 로얄 가든으로 들어간 윌로씨가 천장에 매달린 나무 장식을 실수로 떨어뜨린 때 부터이다.
기하학적으로 정돈되어 있던 이 장식물이 흩어지면서 경직되어 있던 식당은 축제의 장이 된다.
도로위 자동차의 움직임은 회전목마처럼 정겨우며, 꽃을 닮은 가로등이 도시에 생기를 부여한다.
 
잘 정돈되어 있는 건축물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삶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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