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전통이 빨리 무너져버린 나라가 있을까요?
식민지, 전쟁, 가난, 새마을운동, 압축성장, 민주화, 재개발....
한마디로 지금의 한국 사회는 '터무니'가 없어요.
자기 삶의 터전에 내 삶의 무늬가 새겨져 있지 않다는 말이죠.
어떤 공간에 가면 한 사람 인생의 모든 경험과 기억과 내면적 느낌이 살아나지 않거든요.
그러니 앞만 보고 달릴 수밖에 없죠.
오직 돈밖에 믿을게 없고,
그런 충격적인 시차를 매번 겪어요.
다시 벙어리가 되어버리죠...."
<박노해, 한겨레21 인터뷰 기사 중에서>
노동의 새벽을 알리고, 수십년간 지구촌을 걸어다닌 시인이 이야기하는 것이.
누군가의 삶으로부터 빚어진 살아가는 무늬, 내가 살고 싶은 집인 것을 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집들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삶의 무늬는 커녕
터,의 무늬조차 담지 못해왔던 우리의 주거문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나라는 식민지,전쟁을 겪으면서 근대화가 왜곡되고 변형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그로인해 지독한 가난을 겪어온 세대는
잘 사는 것이 무엇보다 최우선이었고,
"아시아의 빛나는 공업국가"를 이루겠다며 조국 근대화를 외치는 통치자는
현대적 도시의 비전으로 도시 입체화와 한강 개발을 추진한다.
1930년에 최초로 지어진 충정아파트부터, 1966년에 지어진 동대문아파트 등
개별적으로 다양한 유형의 새로운 주거를 만들어내던 시기를 뒤로하고
개발의 광풍이 도시를 뒤덮는다.
그러는 와중에 1970년에는 와우아파트가 붕괴되는 참사를 겪기도 했지만
개발의 광풍을 잠재우지는 못한다.
1970년대초 용산과 여의도에 대규모 단지형 아파트가 들어서고,
1970년대 중반부터 강남이 개발되면서
아파트는 부를 축적하는 중요한 재산으로 가치를 갖게 된다.
근검 절약하며 경제적 금욕주의로 생활하던 이들이,
자신들의 근로로 인한 수입보다 가파르게 수직 상승하는 아파트 시세 차익을 부로 축적하면서
문화를 소비하는 계층으로 자리잡는다.
수십년간 재산 가치를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아파트는,
2002년 주거보급률이 100%를 넘어서고
201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투기시대의 종말을 고하기 시작한다.
막 지어도 잘 팔리던 생산자 중심의 주거 공급 시대가 막을 내린 것.
그러는 사이 우리 도시는 아파트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그 아파트에 거주해온 우리는 내 삶의 무늬가 무엇인지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 압구정동, 되게 좋던데?"
<건축학개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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