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s of seeing] 응답하라, 도시주택 (제2편) > ways of se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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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7-25 12:25:46
조회: 9,629  
제목 [ways of seeing] 응답하라, 도시주택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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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통권 063호 | 사람과 글 人ㆍ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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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드]
 
   1980년대 아시아 선수촌 이후로 “아파트를 설계한 건축가”라는 보기 드문 이력을 출발로 삼은 건축가 조성룡은 다양한 유형의 도시 주택을 고민해 왔다. 그것은 세대 수와 예산에 맞추어 (건축가의 작품이라는 아우라를 덧입히며) 부동산 가치를 높인 상품을 뽑아내는 일 이상이다. 산과 언덕을 끼고 도시가 형성되어 온 우리 지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시골 마을과 달리 외부 공간(도시의 여러 공공 시설)과 내부 공간(집)을 어떻게 짧은 시간에 인위적으로 연결(길)해 낼 것인가, 그리고 더 근본으로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삶의 가치와 매력은 무엇이며 어려움과 문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고민을 아우른다. 지난 회에서는 초고층 아파트의 출현, 지방 마을의 아파트 단지화, 그리고 북촌 한옥 마을의 연립 주택을 다루었다. 이번 호에는 그에 이어 언덕의 연립 주택(부산 해운대 빌리지), 신도시의 연립 주택(분당 전람회 주택), 주택 없이 근린 상가만 있는 동네(양재 283.7), 초고층 주상 복합(도곡동 우성 캐릭터빌) 등을 이야기한다. 원래 이 연재는 [인문 건축가 조성룡, ‘서울’의 시간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서울을 이야기하는 기획이었으나, 도중에 제주, 부산, 분당 등 서울이 아닌 여러 곳들이 등장했다. 의미가 있다고 보아 살린 데 데해 혜량을 부탁 드린다. 이 구술은 수많은 의문문들이 이어지는 시간이었다. 연립 주택은 어째서 아파트를 선택할 수 없는 경우의 차선이 되고 말았을까. 왜 이 도시에서는 아파트가 아닌 삶을 선택하는 순간 놀이터와 공원과 주차장과 가까운 세탁소와 관리 서비스를 동시에 포기해야 하는 걸까. 오피스텔이라는 이름의 원룸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빌딩이 오늘날 독신자들이 도시에서 생활할 수 있는 주거의 당연한 모습일까. 모든 질문이 그러하듯, 주택, 즉 우리의 생활 공간과 그 작동 방식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그 자체로 불온하다. 질문으로 인하여, 정치니 권력이니 재벌이니 하는 말들이 추상성을 벗고, 주택이라는 현상을 드러나게 하는, 그 구체적인 욕망과 의도들에 화살처럼 가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질문은 이미 화살을 날리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질문하는 까닭은 단지 과녁을 적중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다. 낱낱의 마디로도, 전체 이야기로도 질문들로 꽉 찬 이 이야기에 대해 삶과 주택에 대한 상상력 가득한 응답들이 도시마다 바람처럼 날아들기를!
 
 
 
 
 
   "그 때부터 저층 집합 주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1990년대 초에 빌라가… 유행하기 시작한 거예요. 물론 그 전에도 빌라는 있었죠. 1970년대, 80년대 효성 빌라가 유명하죠. 집 장사들이 비싼 재료를 써서 상품으로 성공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몇 집을 모아 놓았다 뿐이지 그 집합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빌라의 조건이 뭐예요? 우리 인식에, 빌라라고 하면 연립 주택하곤 뭔가 다르게 느껴지잖아요. 고급스럽고, 비싼 주거로 여기죠. 그런데 법적으로는 빌라나 연립이나 똑같습니다. 주어진 대지에 스무 세대 이하로 지은 집합 주택. 열아홉 세대까지만 연립 주택으로 허가가 나는 거예요. 공급업자도 아예 고런 규모의 땅을 골라요. 넉넉하지 않은 땅에서 해결해야 되니까, 평면이 복잡하게 되기도 하죠. 그 때 내가 생각한 것은, 이건 하나하나의 세대가 아니라 집합에 열쇠가 있다는 거였습니다. 공간이 얽히면서 새로운 도시가 되는 거잖아요. 한창 지어지고 있는 빌라를 그런 개념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땅 모양도 위치도 다 다르지만, 주택들이 모여서 서로 어떤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가, 그걸로 인해서 개별적으로 어떻게 독립할 수 있는가. 그런 고민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실현은 안 되었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북촌의 가회동 11번지 계획, 그 다음이 부산 해운대 빌리지, 분당 전람회 주택으로 이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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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룡, 해운대 빌리지 B지구 입면 콜라주, 1991~1994년 설계. 위의 사진은 길에서 올라가면서 보이는 모양이다. 산이 많은 우리 땅에서 경사진 언덕길에 집을 어떻게 관계맺게 할 것인가는 마을 전통의 현대적 계승에 관련해서 중요한 과제가 된다.
 
 
 
 
   “해운대를 지나서, 달맞이고개에서…” (최백호의 노래 <청사포> 중에서)
 
   "해운대 빌리지부터 얘기하면, 해운대에서 가장 중요한게 뭐예요? 해변이지. 그러니까 해변의 모래밭이 집에서 어떻게 보이게 만드는가. 부산의 달맞이고개는 저층 빌라가 많이 들어선 지역입니다. 언덕이니까 어지간해서는 집집마다 해운대 백사장이 보이는 게 당연한데, 앞에 먼저 지은 집들이 일자로 다닥다닥 붙여 지어서 아주 벽을 쌓아 놓았어요. 자기 생각만 하고 뒷집 생각은 않은 거죠. 뒷집은 아주 높여 짓지 않은 한은 바다를 볼 방법이 도저히 없습니다. 그럼 그 뒤에 지어질 집은 더, 더 높여 짓겠죠. 이래가지고서는 안 되겠다… 해운대 빌리지는 방향을 옆으로 틀었어요. 달맞이고개 집들의 전형적인 방향과 어긋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선으로 멀게나마 바다가, 허헛, 아주 조금 보이게 되요. 물론 전망도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나부터 반성하자는 마음이었어요. 내가 설계한 집이 뒷집 전망을 조금이나마 덜 가리고, 올라가는 사람들 시선도 덜 막도록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언덕 위에, 우리 나라에 흔한 구릉지에 집을 지을 때 내 옆이나 뒤를 어떻게 배려해야 되는지를 시도해 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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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와 달맞이고개. 1975년 해운대 주공 AID 아파트가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거의 비어 있던 달맞이고개(위 왼쪽)은 1980년대에 빠른 속도로 개발되었다. 바다를 향해서 줄을 세운 듯 빌라가 낮은 담을 이루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AID 아파트가 초고층으로 재개발(위 오른쪽)되면서 경관이 크게 바뀌었다.
 
 
 
 
   “빌라 동네에 웬 연립 주택 짓는다꼬!”
 
   “두 번째로 그 때 해운대에 가 보니 이른바 고급 빌라라는 것이 전부, 그 있잖아요, 만사드 지붕에다가 색 타일이며 기와, 비싼 대리석 붙인 집들인 겁니다. 지금도 그런 일색이에요. 울긋불긋 요란하죠. 우리 땅 풍경하고 도무지 맞지도 않고요. 심의를 받으러 갔더니 반드시 그런 자재를 써야 한다는 지침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지침은 대체 누가 만들었냐고 물었더니 부산 시장이래요. 시장이나 구청장이 누구냐에 따라서 우리 도시 모습이 그렇게 변해 온 겁니다. 따를 수도 없고 안 따를 수도 없어 마감 재료는 다 정하지 못한 채로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허가 받을 무렵 시장이 바뀌었습니다. 새 시장이 되도록이면 무채색을 권하면서 다행히, 괴상한 지침을 안 따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뒷집 주인이 왜 이런 고급 주택지에다가, 연립 주택같은 걸 짓느냐면서 한참 싸움을 걸어요. 자기네가 보기에 이건 빌라가 아닌 거죠, 평범해 보이는 무채색 재료를 쓴 집이니…. 그런 정도로 빌라와 연립 주택의 관계가 첨예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애초에는 같은 길을 따라서 세 단지를 계획했는데 두 단지만 실현되었습니다. 분양할 무렵에 이 일대가 호화스럽다는 비판이 방송에 자꾸 나면서 분양이 제때 안 되었어요. 그래도 해운대 빌리지가 들어서고 난 다음부터 달맞이 언덕의 건물들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을 느낍니다. 지역에 선례가 되었으니 의의가 있다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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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룡, 해운대 빌리지 A지구, 1991년 설계. 벽돌과 기와를 쓰지 않았으므로 주변 주민들에게 고급 빌라가 아니라 연립 주택으로 낙인찍혔다. 사진 김재경.
 
 
 
 
   공간에 주름을 주면 시간이 바뀐다
 
   "계속 아시아 선수촌에서 못 했던 걸 해 보려고 애를 쓰던 단계예요. 큰 마당은 아시아 선수촌에서 해 보았지만 그것을 더 작은 스케일로 다시 나누는 것, 복층 유니트…. 그래서 해운대 빌리지는 세대 수가 몇 안 되지만 세대별 유니트가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해요. 재미는 있어요. 북촌도 그렇습니다만 달맞이 고개도 길 자체가 경사져 올라갑니다. 그런 땅에서 바닥하고 집이 관계를 어떻게 맺을 수 있을까요. 또 이런 유형의 집합 주택에서 거주하는 이들의 일상의 접촉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런 고민을 계속 했습니다. 거창한 공동 생활의 부담감보다는 일상에서 여러 가지 사소한 행위가 일어나도록 외부 공간을 구성해서, 그것을 통해서 연대감을 조금씩 느끼게 하는 편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하나가 이런 거죠. 길가하고 단지 안 사이에 걸쳐서 중간 영역이 끼워져 있습니다. 스케일을 조금씩 나누어서 계단과 경사로를 놓아가면서 공간을 나눴어요. 집이라는 개인 영역하고 공동으로 쓰는 영역 사이사이에 중간 영역을 둔 거예요. 경사를 올라가는 동안 조금씩 꺾여 가며 작은 공간이 생기면, 올라가는 길이 평평한 것보다 재미있죠. 마치 물고기들이 구불구불하고 수초도 좀 있는 구석에 더 많이 모이는 것처럼, 그렇게 자꾸 주름진 공간으로 만들자. 이게 사람들에게 공감을 줬나 봐요. 실제로 가 보면 여기를 즐겁게 쓰고 좋아들 합니다. 달맞이 고개 너머가 청사포잖아요. 거기 바닷가 마을의 석축이 눈에 띄더라구요. 비탈에 바닷돌을 쌓아서 축대도 하고 담도 짓습니다. 그 석축 방식을 가져와서 담으로 쓰려고 했는데, 건설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공사 관리가 잘 안 되어 엉뚱하게 강자갈을 쌓아 놓은 게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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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룡, 해운대 빌리지 B지구 안쪽의 공공 공간. 공동 주택에서 각 세대의 내부 평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외부 공간의 계획이고, 거기에서 일상의 공공성이 생겨난다. “흔히 강조하는 프라이버시라는 개념도 … 내가 필요할 때 주변으로부터 차단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 벽을 둘러쳐서 고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이를테면 공용 마당에 면한 거실의 창에 커튼을 설치하면 시선은 막더라도 마당에서 뛰어 노는 어린이의 즐거운 소리는 들을 수 있는 것이다.”(조성룡, <해운대 빌리지>, 1995년.) 사진 김재경.
 
 
 
 
   분당 신도시가 담을 새로운 주거의 풍경
 
   “그 무렵 서울에서는 분당 신도시로 이주가 시작되죠. 전람회 주택은 분당 신도시를 꾸리던 안건혁이라는 도시 계획가가 주택공사에 제안을 해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분당은 아파트 중심의 신도시였습니다만, 분양하고 남은 자투리땅을 골라서 주택 전람회 지구라는 것을 만들고, 건축가 스무 명에게 연립 주택 설계를 시키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신도시의 아주 평평한 땅이었습니다. 해운대처럼 딱히 경관이 있는 곳도 아니고 북촌과 같은 경사도 없었어요. 그런 대지를 자로 자르듯 딱딱 나눴으니까 땅의 조건에서 풀어낼 개념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길에서 각자의 집에 어떻게 들어가는가를 고민했습니다. 단지 안에 작은 길을 냈어요. 그런 다음 모든 세대가 그 길에서 자기 집에 곧바로 들어가게 한다는 원칙을 세웠어요. 집합된 단지지만 각각의 집은 마치 단독 주택이나 마찬가지로 느껴지게 하면서, 그러면서도 외부 공간에서 접촉이 일어나도록 풀어 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북촌(가회동 11번지)에서 시도한 걸 계속 실현해 보려고 한 겁니다. 물론 분당은 북촌보다 집이 넓다는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여러 세대가 하나의 길을 함께 공유하면서 살 방법을 찾으려고… 아이고, 이건 설계해 놓고선 후회도 좀 했어요. 평면이 워낙 복잡해서, 실시 설계를 할 때 너무 힘든 거야. 보통은 아파트나 연립이나 그렇잖아요, 방 위에 방 위에 방 위에, 변소 위에 변소 위에 변소… 그렇지 않게 만들려고 한 거죠. 1층은 전부 자기 마당을 두었고, 2층 세대는 마당이 없는 대신에 테라스를 많이 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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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룡, 분당 연립 주택 모형, 1993년. 10세대를 위한 연립 주택 단지로, 언뜻 단조로워 보이지만 가운데로 낸 길을 중심으로 모든 집이 서로 다른 길로 들어가고, 각자의 마당이나 외부 계단을 지닌다. 모든 세대는 복층형으로 1층에 방처럼 독립된 거실 등을 두고, 2층에 개인 공간을 두어서 가족 안에서도 공공 공간과 개별 공간을 나누었다. 한 집에 사는 가족이지만 각자 서로 다른 생활을 추구하고 그에 따른 영역을 원하는, 새로운 시대의 생활 방식을 고려한 것이다. 이 단지가 지금의 분당구 분당동 화목빌라다.
 
 
 
 
   양재 개발 잔혹사
 
   "강남 개발이 압구정동에서 시작해서 강남역까지 먼저 되고, 거기에서 동쪽으로는 역삼동 삼성동으로, 서쪽으로는 서초동으로 해서 남부 순환선을 타고 사당역까지 다시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강남역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퍼져 나갈 때까지도 남쪽, 양재 쪽에는 거의 뭐가 없었어요.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도 있지만, 말죽거리는 개발 시대의 투기 열풍이라는 부정적 느낌이 있는 지역이었죠. 그런데 테헤란로도 좀 채워지고, 올림픽 하면서 잠실까지 얼추 이어지고 나자 그 다음에는 양재 쪽으로 넘어갑니다. 양재에는 아파트보다는 주로 100평짜리 주택지가 많았어요. 나도 그 때 개발 루트를 함께 따랐죠. 근린 생활 시설을 하나 설계하고, 역삼동에서 양재동으로 사무실을 이사하게 됩니다(양재 283.7, 1992년). 근린 생활 시설이란 건, 주택가 주민들이 늘 필요로 하는 시설, 이를테면 잡화 가게, 미장원, 바둑 두는 기원, 또 뭐가 있을까? 조그만 사무실나 학원이 들어가는 건물이죠. 그런데 양재에는 주택도 없는 빈 땅에 근린 생활 시설만 자꾸자꾸 들어서는 거예요. 거기 땅을 강남 사는 사람들이 꽤 샀을 텐데, 자기 집은 벌써 강남에 있고, 아직은 거기까지나 이사와서 집 짓고 살 사람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 때 정부에서 세금을 물려요. 땅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건물을 안 지으면, 토초세? 토지 초과 이득세라는 이름이에요. 매년 세금이 굉장히 높아서, 어, 이거 한두 번은 괜찮았는데 몇 번 쌓이니까 커지네, 그렇게 낼 바엔 대충 작은 건물이라도 짓자…. 그렇게 우후죽순처럼 상가 건물이 들어선 데가 지금 양재동이예요. 옛날에 내가 ’양재동 텍사스’라고 부른 적도 있지만, 근린 생활 시설만 모여 있는 참 이상한 동네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고 깨면 건물 하나씩 서는 거야. 옆에서 계속 짓고 있으니 먼지 잘 날이 없고, 시끄럽고, 그게 1990년대 초 양재동에서 일어나던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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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초과 이득세는 토지 공개념에 기초해 1989년에 정부에서 토지 투기를 막기 위해 도입한 세제였으나, 그 내용과 과정의 부실함으로 부작용을 낳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유명무실해졌다. 세금은 과징금이라고 할 정도로 가혹했다. 강남 땅부자들은 부실한 가건물이라도 지어 세금을 슬쩍 피하거나, 빈 땅에 골프 연습장이니 스포츠 센터를 세워 회원권을 팔면 그만이었다. 결국 난립한 건물들이 미래의 가치를 앞당겨 허비하고 만 셈이다. 토초세로 유령 건물이 양산되던 상황을 보도한 1993년 1월 26일자 경향신문 기사.
 
 
 
 
   도곡동, 주상 복합 시대
 
   "그렇게 도시가 팽창되고 시설들이 많이 들어서는데, 아, 좀 잘하면 좋을 텐데… 싶었어요. 하지만 정작 일감은 좀처럼 안 들어와서 건미준 운동(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건축계의 불합리한 관행과 제도를 개선하고자 1993년에 건축가들이 꾸린 기구. 사무국장을 맡았다.)이니 서울건축학교(새로운 시대의 건축가 교육을 천명하며 1994년 시작된 워크숍 중심의 비제도권 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다.)를 할 땝니다. 그 즈음에 하게 된 일이 26층짜리 도곡동 주상복합이었습니다. 우성 캐릭터빌. 도곡동이나 양재동이나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죠. 지금의 타워팰리스 바로 앞입니다. 이십만 제곱미터쯤 되던가? 오만 평이 업무 상가 복합 지역으로 도시 계획상 정해졌대요. 그러니까 준주거 지역이고 주상복합이 가능한 건데, 당시에는 아무 것도 없는 벌판이었어요. 타워팰리스니 대림 아크로빌도 안 들어섰을 때예요. 그런 큰 건물들은 큰 설계 사무소에다 시키고 나보고는 제일 작은 땅을 하래요. 팔백오십 평짜리… 이걸 가지고 끙끙거리고….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나서 우성건설이 부도가 나 버렸어요. 공사 도중에 은행 관리 들어오니까 재료 선택도 제대로 안 되고 해서 시공에서 좀 실패한 건물이에요,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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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동 우성 캐릭터빌 모형, 뒷쪽 입면, 1993~1997년. 기능에 따라서 입면을 세 덩어리로 구분해서 바깥에서도 내부의 기능을 알아볼 수 있게 했다.
 
 
 
 
   도시의 길을 고층까지 끌어온다
 
   "땅이 요렇게밖에 안 되는데, 업무 시설하고 주택을 한 건물에 집어 넣어야 한다는 게 조건이에요. 우선 아래부터 세 토막으로 나눴어요. 밑에는 은행하고 업무 시설, 그 다음에 복층형 아파트, 맨 위 20층부터는 전망용 펜트하우스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좀 있죠. 그 양식에서 항상 입면을 세 부분으로 나누잖아요. 머리하고 몸 발…. 내부 기능이 다르니까 한 건물이지만 세 부분을 전혀 다른 재료로 표현했습니다. 나에게 이 프로젝트의 과제는 공중에 떠 있는 주거였습니다. 어차피 업무 시설이나 상업 시설은 도시와 가까운 아래 쪽에 있어야 되니까 주거가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잖아요. 아파트는 아무리 고층이라고 해도 그나마 땅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여지는데, 이건 붕 띄워서 위에다가 짓는 거예요. 공중에 떠 있는 주택을 어떻게 길과 연결할 것인가… 내가 지금까지 계속 길-마당, 그런 소리를 했는데 이제 어떡헐거냔 말이죠. 나름대로 해결은 했죠. 위에다 마당 하나 두고 길을 만들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오면 일단 땅같은 데 도착하게 하자, 그게 공중 정원이에요. 거기서부터 주택으로 올라갑니다. 물론 주민들이야 어차피 엘리베이터로 각자 자기 집에 도착하는 데만 관심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도시하고의 문제를 생각한 거죠. 어쩔 수 없이 땅에 짓지 못하고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을지라도 집에까지 갈 때 동네와 가로에 대한, 어떤 경험을 하게 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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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동 우성 캐릭터빌 주택 부분의 안쪽 복도 투시도. 보통 아파트와 달리 넓고 천장이 높은 편복도 안쪽으로 복층형 2층 발코니가 튀어나와 있다. 오른쪽으로는 큰 창을 터서 날씨 변화를 느끼게 했다. 복도가 오로지 내 집을 가기 위한 통로가 아니라, 마치 2층 주택가의 골목길처럼 풍부해진다.
 
 
 
 
   집으로 어떻게 들어가시나요
 
   "사무소나 식당 있는 상가 건물에 들어가서 집에 가는 게 아니고, 엘리베이터 내려 집 문으로 쏙 들어가는 게 아니고, 그래도 여기가 사람 사는 동네라는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걸 접근(access)의 문제라고 본 거죠. 아시아 선수촌하고 같은 고민예요. 거기서는 자동차 내려서 주차장에서 자기 집에 그냥 들어가는 게 아니라 얼마간의 중간 영역을 만들었잖아요. 그처럼, 그래도 난 지금 도시에 기대고 있다라는 감을 주려고 했습니다. 중간의 복층형 아파트를 편복도로 설계했습니다. 편복도에 미쳤나봐… 어떻게든 근사한 편복도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이 복도 폭이 1.5미터쯤이 아니라 보통 아파트 두 배나 됩니다. 한 세대가 복층형인데 2층의 발코니를 복도 위로 냈어요. 그러니까 복층형이라는 걸 집 바깥 복도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죠. 건물 안이지만, 이건 복도가 아니라 길, 거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마치 2층집이 이어진 골목길을 걷는 것처럼, 중간 영역을 만들었다고요. 바깥의 날씨를 느낄 수 있도록 중복도가 아니라 외부로 창을 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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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동 우성 캐릭터빌 주택 부분의 복도 단면 스케치. 복도와 집안의 바닥 높이를 조금만 다르게 해도, 편복도식의 장점을 유지하되 집안이 들여다보이는 불편은 막을 수 있다.
 
 
 
 
   한국적 변종 주상복합
 
   "주상복합이라는 건 업무 시설이나 상업 시설하고 주거 시설을 합쳐 놓은 거잖아요. 합치면 용적율을 조금 더 올려 준다는 거지요. 그 인센티브 때문에 건설 회사들이 너나없이 돈벌이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주상복합이란 건, 미국에서처럼, 대도시에서 쇠락한 도심 안을 살아나게 하려고 만들어낸 형식입니다. 교외로 나가 버린 주거 기능을 도심 안으로 다시 끌고 들어와서 출퇴근 부하도 줄이고 도심이 야간에 텅 비는 현상을 없애려고, 그걸 권장하려고 인센티브를 주는 겁니다. 어차피 유럽은 아래 층에 가게가 있고 그 위에 주거를 두는 전통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당시 서울의 주상복합은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우선 전부 도시 외곽에 지어요. 제일 많이 지은 데가 허허벌판이던 도곡동이라든지 대방동, 보라매 공원 근처에 공군 본부가 빠져나가면서 갑자기 빈 땅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애초에 없던 도시를 만들겠다는 거죠. 상당히 한국적인 상황에서, 인센티브가 주어질 뿐만 아니라 건설 회사가 분양 금액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주택, 아파트는 분양가 상한제라는 것이 있었잖아요. 상한선이 평당 삼백만 원이라면, 아무리 땅값이 비싸도 그 이상은 책정하지 못했습니다. (민간 택지에 분양하는 아파트에 대한 상한제는 2015년 4월에 폐지되었다.) 근데 주상복합이라는 건 상한선이 없다고 하니, 굉장한 호재죠. 아파트 상한제를 피하면서 조그만 땅에도 비싼 돈을 받을 수 있는 금덩어리, 그게 오피스텔, 우리 나라 주상 복합의 시작입니다. 큰 건설회사가 이런 짓을 하는 거예요. 주택 보급률도 꽤나 높아져 갈 무렵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더 부가가치를 뽑을 데가 없나 머리를 쓰는 겁니다. 준주거 지역이라는 건 상업 지역이나 거의 마찬가지인데, 텅 빈 땅을 그렇게 정해 놓고 거기다 다시 주거를 끼워 넣는다는 거잖아요. 지금 우리의 주상 복합은 필연적으로 발생한 도시 시설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기형적인 형식으로 태어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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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종, <그린시 시티(GreenSee City) #422-4>, 153×188cm, Pigment Print, 2014년. 사진가 이은종은 <그린시 시티> 연작에서 확장되는 도시와 자연이 마주치는 경계에서 대도시 서울의 새로운 경관을 포착하고 있다. 우성 캐릭터빌(사진 한가운데)의 준공 당시에는 앞쪽의 아파트 단지만 있었을 뿐 뒷면이 허허벌판이었는데 이제 타워팰리스 등 초고층 초호화 주상복합 건물이 키 큰 숲처럼 빽빽하게 들어찼다.
 
 
 
 
   주택 200만 호와 제1기 신도시
 
 
   "분당 신도시도 그 무렵에 개발이 되죠. 1980년대 말부터 1995년 사이에 서울의 외곽이 확장되고,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갖가지 문제가 생겨요. 재료는 전부 품귀. 인건비는 엄청나게 상승하고요. 양재동도 공사 일할 사람을 못 구하는 거야. 제대로 된 기능공도 양성하지 못한 채 임금만 뛰고, 모래도 부족하니까 바닷 모래 퍼서 써서 부실하다느니, 그런 얘기가 나올 때입니다. 개발이 가장 폭풍같던… 무렵이예요. 신도시에 20만 세대를 지었습니다. 일산도 있고 중동도 있지만 그 때 가장 인기가 높던 데가 분당이죠. 그런데 신도시라는 곳이, 특히 분당은, 완전히 자동차 도시예요. 물론 어차피 자동차 시대가 되었기는 하지만, 1990년대의 도시 계획이니까, 그 전에 비해서 계획 기법이 나아지거나, 다른 나라의 실패를 참조할 수도 있으련만 오히려 그 실수를 고대로 반복한 거죠. 강남에서 했던 것처럼 둔덕은 다 밀어 버렸고요. 사람이 살기에 오히려 좋은 도시가 아닌데도 다른 데 비해서 자동차가 뻥뻥 뚫리고 길이 넓으니까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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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신도시 공사 당시, 1992년. 노태우 정부 시절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에 따라 조성된 제1기 신도시는 분당, 평촌, 산본, 중동, 일산의 다섯 군데였다. 신도시에 30만 호의 주택이 공급되면서 주택 보급률은 1997년 82%로 크게 높아졌다. 특히 기존 도시 조직이 없던 평지에 조성된 분당과 일산은 쾌적한 주거 환경으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반대로 주변 지역의 극심한 난개발과 교통 체증을 유도하는 등 많은 부작용도 낳았다. [사진 출처 : 정부 e 영상자료관]
 
 
 
 
   시원하고 넓은 길
 
   “그런데 자동차 길이 넓다는 그것이 안 좋은 점이에요. 흔히 넓은 길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옛날에 어느 유명한 건축가가 얘기했듯이, 길을 가다가 건너편에 오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최소한 ‘아. 누구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좋은 길이라, 그 폭을 넘어서면 이 쪽하고 저 쪽하고 관계가 없는 거죠. 분당도 그렇지만 신도시에 가 보면 밤에 혼자 걸어갈 때면 사람은 별로 없고, 양쪽 인도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안도감이 안 생기거든요. 상점은 있는 데만 죄다 모여 있고, 아파트 근처는 컴컴해요. 조닝 플랜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섞이지 않는 겁니다. 그런 척도가 아쉬운 거죠. 멀찍이 보면 쾌적한 느낌으로 보일지언정, 그 쾌적함이 시각적인 거지, 심리적으로는… 물론 서울에 비해서 길이 넓으니까 쾌적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건 학습된 거죠. 미국이야 대중 교통이 좋지 않으니 차도가 넓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동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반드시 도시를 그렇게만 만들 필요는 없는 거죠. 모든 사람이 자가용 모는 것도 아니고, 우리 나라처럼 이렇게 좁은 지역에 몰려 살 때 꼭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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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의 아파트 단지들은 넓은 대로에 둘러싸여 자동차를 이용한 접근에 가장 알맞게 조성된다. 그로 인한 폐쇄성을 단지 내의 더 훌륭한 조경이며 편의 시설로 상쇄하려 하면서, 단지의 고립성은 더욱 강화된다. 대로에 둘러싸인 근린주구(Neighborhood Unit)의 부작용은 이미 1930년대 미국에서 지적되었지만, 2000년데의 한국 신도시에서도 꾸준히 추구되어야 할 가치 있는 목표였다. 제2기 신도시 중 하나인 파주 운정 신도시의 공공 임대 아파트 단지. [사진 김재경]
 
 
 
 
   아파트는 되지만…
 
   "토건 국가잖아요. 부동산 붐을 계속 일으켜야지. 건설 회사가 계속 뭘 해야지. 그게 1970년서부터 거의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겁니다. 지금은 더이상 개발할 땅이 없을 정도가 된 거지요. 1992년도에 건미준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이나 제도를 건의했습니다.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지만 정작 아무 것도 안 고쳐지는 겁니다. 그대로 있어야만 돈을 버는 거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자꾸만 규정을 허술하게 만들어야, 앞뒤가 덜 맞아야 빠져 나가는 거죠. 지금까지도 안 고치는 것 많아요. 앞에서 연립 주택하고 빌라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연립 주택과 아파트 문제도 똑같다고 봅니다. 아파트하고 연립이 뭐가 달라요? 거의 똑같이 생긴 두 단지라고 해도 5층이면 아파트로 허가를 받을 수 있고, 4층이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 저층을 짓겠어요. 그 이야기는 나중에도 하겠지만, 지난 몇십 년 동안 아파트가 열풍이었습니다. 연립이나 주택은 후진 거로 아예 인식을 굳혀 버려야 너도나도 아파트로 가려고 들 거 아녜요. 그렇게 해야 돈을 버는 누군가가 있는 거고요. 저층 연립도 살기 좋다, 이런 시도를 하면, 바보…. 주상 복합도 마찬가집니다. 고층 오피스텔이라면 하나짜리 박스로 좍 올라가서 아주 멋있어 보이게 설계해 줘야 하는데 주택하고 상가를 겉으로 드러나게 구분을 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할 필요도 없는 짓이고,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거죠.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래요. 그 때는 내가 아 이렇게 고심한 걸 왜 모를까, 싶었는데, 하면 안 되는 거였던 겁니다. 난 그렇게 생각해요. 질문이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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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국의 주택 정책은 민간 공급에 위임되어 운영되어 왔다. 넓은 택지를 분양받을 수 있는 민간의 대형 건설 회사가 모델하우스를 지어 놓고 미래의 입주민들에게 아직 생겨나지 않은 물품의 대금을 미리 걷었고, 그렇게 지어진 고층 아파트 단지 내부에서라야 상하수도와 냉난방, 주차와 방범 시설이 아파트의 브랜드 이름으로 실현되었다. 그것은 곧 국가와 지방 정부의 공공 영역을 사기업에게 위임하는 관계가 성립되고, 기업 브랜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개인 단독 주택(다가구 포함)이나 소규모 연립 주택(다세대 포함)은 꾸준히 이러한 공공 서비스로부터 배제될 때만이 가능한 모델이었다. [사진 : 김재경.]
 
 
 
 
   오피스텔에는 누가누가 사는가
 
   "주거와 업무나 그 밖의 시설이 복합되는 현상 자체는, 앞으로 도시에 짓는 건물이라면 계속 복합되어야 된다고 봐요. 도시라는 곳이 그렇게 사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복합이 제대로 되어야 하겠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이익을 복합된 상태에서 누리고, 복합되어 있으니 정말 좋다라고 느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수영장이나 헬스 클럽같은 운동 시설도 들어가야 하고, 그것뿐이 아니겠죠. 그런데 대부분 주상 복합이, 고작 밑에 상가 몇 개 두는 게 다란 말이에요. 생활하고 맞아들어가려면, 소호같은 게 들어가서 필요한 사람은 가까운 거리에서 일도 할 수 있어야 되고, 아이들 기르는 사람을 위한 데이케어 센터나 유치원, 놀이 시설, 주부 커뮤니티도 섞여야 할 겁니다. 업무 시설하고 주택을 한 건물에 모아 넣었다 뿐이지 그 주택과 업무 시설을 따로따로 쓴다면 그런 건 복합이 아닌 거죠. 도심으로 사람들이 돌아와서, 일터하고 자는 데가 가까워지고, 그 안에 삶의 과정마다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이 고루 들어가서, 굳이 외곽으로 안 나가도 좋은 질의 생활을 해결한다, 그거야 바람직하겠죠. 그 목적에 안 맞기 때문에 문제인 거죠. 이건 저층 고층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고밀도 저밀도의 문제도 아닌 거 같습니다. 아주 컴팩트한 건물에서도 가능하다고 봐요. 그런데 본질이 아닌 형식만 빌려 와서 부동산 논리로 가져가 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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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가구, 1인 가구가 급증했고, 이명박 정부 들어 도시형 생활 주택과 오피스텔이 여러 규제 완화에 힘입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오늘날 도시 상황에서 1인 가구는 그 자체로 빈곤에 연결될 여지가 다분하고, 여러 보호의 사각 지대에 놓이기 십상이다. 이른바 원룸은 단순히 잠잘 곳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다. 소규모 주거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을 좇아 가족 제도를 포기했을지도 모를) 개인의 개성과 삶의 질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까, 질문은 이제 겨우 초보 단계에 불과할지 모른다. [사진 :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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