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의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날을 배경으로,
헤어지려는 부부(현빈,임수정)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가려는 아내에게
그 아내의 사소한 취향까지도 살뜰하게 챙겨주는 남편은 밉기만 한 존재다.
바람피운 아내에게 큰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내가... 화를 낸다고... 바뀌는게... 있...나?" 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남편은
답답하기만 하다.
아내는 출판사의 직원인 듯하고,
남편은 한때 건축가를 꿈꾸었던, 지금은 건축을 포기한 건축인이다.
이 부부는 사랑하는 것일까,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2011, 이윤기 감독, 현빈/임수정 주연)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30814 어린시절에 많이 불렀던 동요 <우리집>이다.
이 동요의 제목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1. 내가 커서 아빠처럼 어른이 되면
우리 집은 내 손으로 지을거예요
울도담도 쌓지않은 그림 같은 집
울도담도 쌓지않은 그림 같은 집
언제라도 우리집에 놀러오세요
2. 내가 커서 엄마처럼 어른이 되면
우리 집은 내 손으로 꾸밀거예요
넓은 뜰엔 꽃을 심고 고기도 길러
넓은 뜰엔 꽃을 심고 고기도 길러
언제라도 우리집에 놀러오세요
이제와 생각해 보니,
건축은 참 우리 곁에 가까이, 항상 있었구나, 싶다.
단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집 근처의 어린이도서관엘 주말마다 아이와 함께 가는데,
아이들의 책 중에서도 집에 관한 이야기, 마을, 정원에 관한,
건축과 관련된 재미있는 글이 많은 것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한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꿈을 적어둔 내용이 흥미롭다.
수십명의 아이들 중에 5명이나 "건축가"를 꿈으로 적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건축"이라는 단어조차 몰랐는데,
이 아이들은 어디서 건축가를 접해 보았을까 궁금하다.
10월 23일, 팟캐스트에 출연한 김광현 교수님은
"건축을 사랑한다는 것은, 응석받이와 같은 언어다." 라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이번 기회에 국어사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사랑의 의미와 건축을 합쳐보니,
1. 건축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2. 건축주/사용자를 돕고 이해하려는 마음.
3. 건축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세 가지의 정의중 건축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1번의 의미로 건축에 다가갈 때이다.
주로 영화나 드라마 속 멋진 건축가, 예능 프로에 노출된 건축가의 겉모습만을 보고
"나도 건축을 하고 싶다"라고 말할 때이다.
조성룡도시건축에는 몇몇 사람들이 건축가의 작품이 너무 좋아서 찾아왔다며,
일을 함께 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몇달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나가버리곤 한다.
작품으로 근사하게 완성된 그 모습만을 보고 환상에 빠지다보니,
그 작품을 만들기위한 99%의 찌질할 수도 있는 고단한 노력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건축을 1번의 의미로 사랑할 때,
건축의 문제점을 보지 못하고, 비판을 하지 못하고,
사회적 역할을 다 하지 못할 것이다.
대학교 시절, 몇몇 선배들은
"나는 건축과 결혼하겠어." "나는 건축을 사랑해" 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 당시 멀고도 험한 여정의 출발선에 있는 나에게 건축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알랭 드 보통도 건축을 하고 싶었고,
오르한 파묵은 건축학과를 다니기도 했고,
이상도 건축을 전공했다.
건축을 하고 싶었다는 것, 건축을 하려했던 것과,
지금 건축을 하고 있는 것은 자명하게 다른 일이다.
수없이 많은 세월을 고단한 노력으로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한 후에
그 건축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게 되었을 때.
건축주 혹은 사용자가 원하는 공간을 실체로 만들어내기 위해
그들을 돕고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노력했을 때.
건축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건축을 하는 지금 이 순간은,
그저
"그냥 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