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s of seeing] 봉지 판타롱 5천원 > ways of se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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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3-28 02:09:19
조회: 6,796  
제목 [ways of seeing] 봉지 판타롱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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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7일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동대문주차장의 지하1층엔 손님이 전혀 없는 잡화점이 있다.
이곳에서 파는 봉지 판타롱은 10장에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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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완공되고도 몇달간의 준비 기간 후에 개관한 대규모 건물이라기엔,
차라리 봉지 판타롱을 팔아야할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세들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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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계단 디테일은, 말하자면 동네 건축업자가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계단판은 화강석을 한 판으로 깔고, 하부의 콘크리트면에 몰탈을 발라 수성페인트로 마감하는 것.
평당 300만원이 되지 않는 평택 도시형생활주택을 지은 시공사가 꼭 이렇게 하겠다며 바꾼 모양새와 똑같다.
가장 손쉽게, 공정이 단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 계단실 한 귀퉁이에는 전체 층을 관통하는 도시가스 배관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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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번진 백화의 흔적과, 고르게 포장되지 않은 바닥의 화강석.
건물 규모에 맞지 않는 초라한 자전거 보관소.
 
5천억원은 도대체 어디다 탈탈 털어 쓴 것일까.
45,133장의 알루미늄 판넬을 만드는데 다 들어간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아주 사소한 것들은 우리 눈에만 보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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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원 저 너머에 ddp의 지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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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우주선이 착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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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앉으면 ddp는 조명으로 옷을 갈아입고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듯 하다.
이리저리 얽혀 있는 외부와 내부공간을 돌아다니다보면 저절로 감동의 물결이 밀려온다.
현실은 잊고 이 곳에서 안주하고 싶기까지 하다.
 
이미 이곳은 관광명소가 된 듯하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계속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평생에 누가 우리에게, '5000억을 줄테니 당신 마음대로 설계해보라'는 극진한 대접을 해 주겠나.
그렇게 만들어진 건물이 감동적이지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기일 것.
 
스케일은 건축가의 특권이라며 짜증내며 돌아선 건축가의 당당함에 고개숙일 뿐.
 
 
하지만 현실은,
바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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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 아름답다고 친절하게 푯말까지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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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운동장의 흔적은 2개의 조명탑과 짧은 설명이 담긴 안내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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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중 나온 유구를 급히 다른 곳으로 옮기고 몇 개의 돌덩이만 박제처럼 설치해 놓은 유구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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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위험 표지판으로 위협하는, 접근 금지된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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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의 동대문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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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간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운동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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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ddp 뒤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어둠속에 무덤처럼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켜지지 않은 정원등이 마치 비석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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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디자인 제품이 눈을 호사스럽게 하지만, 선뜻 사게는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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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텅 비어 있는 내부 육교에서 5천원자리 봉지 판타롱이라도 팔면 살텐데.
세금으로 나간 5천억을 메꾸려면 많이 사줘야 하는데 말이다.
1억개만 사면 되니, 온 국민이 2개씩만 사면 되겠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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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의 이 시가, 문득 생각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끄을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웁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기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을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1901년~194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