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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6-01 14:25:24
조회: 9,377  
제목 [ways of seeing] 도시 서울의 인문적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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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rikszine.korea.ac.kr/front/article/humanList.minyeon?selectArticle_id=597







2015년 05월 통권 049호 | 사람과 글 人ㆍ文






조성룡
건축가. 1944년 생. 인하대 건축과 및 동 대학원 석사.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의재미술관, 소마미술관, 선유도공원 등 소수 건축물을 설계했다. 서울건축학교 교장을 지냈고 지금 성균관대 명예석좌교수로 있으며, 한국 최고의 건축물 20에 가장 많은 작품이 뽑힌 건축가이기도 하다. 2회의 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서울시문화상, 김수근건축상 등을 수상했다.
※ 인터뷰 및 정리: 심세중(수류산방 대표)







[서울역 옆을 지나는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사람 중심의 거리로 바꾼다는 계획이 지난 해 발표되고 나서 남대문 시장 상인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시민 공청회는 제대로 열어 보지도 못하고 무산되었다. 외국인 4명을 포함해 7명의 건축가와 조경가 팀을 초청한 공모전을 발표하는 2015년 2월 29일의 기자 회견 자리에서는 지명받은 이들이 전달받은 적이 없던 구상이 시민들에게 발표되었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웹진 민연에 연재 중인 조성룡 선생도 그 중 한 명으로 지명되었다. 2015년 5월 13일, 서울역 고가 국제 지명 현상 설계의 당선작이 발표되었다. 네덜란드의 설계 사무소 MVRDV의 대표 위니 마스(Winy Mass)의 "서울 수목원"이다. 조성룡 팀의 안은 2등이었다. 공모전 요강에 존재하지 않던 상이었다. 이 이야기는 원래 연재의 뒷부분에 계획되어 있었지만 논의 끝에 순서를 바꾸었다. 이 연재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우리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보고,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 그리고 이미 조금씩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 확산될 여러 논의에 대한, 공공적 시사점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시 그로부터 열흘이 넘게 지나도록 여전히 7개 제출안의 전모는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 추측이 분분한 상황에서 한 개의 안이라도 정확한 내용을 공유하고자, 다소 긴 이야기를 모두 소개하기로 했다. 조성룡 선생은 지명을 받고 참여 여부에서부터 깊은 고민을 했고 주변에서도 우려하고 말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참여하기로 한 까닭과 의의를 밝혔다. 팀의 제안을 요약한다면 (1) 기존의 다리를 잘 파악해 재활용하면 비용을 줄이면서도 여러 개의 길을 만들 수 있다 (2) 구조 보강 예산을 줄여 공공 시설에 투입하면 도시 재생 효과를 높일 수 있다 (3) 우리 역사와 지형을 끌어안으며 미래적 가치를 담은 모두를 위한 길을 만들 수 있다 (4) 제안과 완성 과정에 여러 분야와 시민들의 참여에 열린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인터뷰는 당선작 발표 이전에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4월 29일 외국인을 포함한 심사위원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마친 이후 보름이라는 기간 동안 명확한 해명 없이 발표일과 절차가 수 차례 변경되고, 대체 고가 신설 등 공모를 무색케 하는 소식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에 여러 경로를 통해 진심을 담아 호소하기도 했으나 답변은 물론 제출된 안의 내용을 열람할 수도 없는, 몹시 힘든 상황 속에서 긴 시간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해 주신 조성룡 선생님께 감사 드린다. 이미지 자료는 전문적인 도면이나 다이어그램보다는 컴퓨터 그래픽을 위주로 골랐다. 국제 공모이기 때문에 제안은 영문으로 제출되어야 했다고 한다. 도면을 비롯한 영어 표현에 대해서 독자들의 양해를 부탁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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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고가 모형. 사진 김재경. 고가를 가리지 않기 위해 고층 빌딩은 저층부만 표현했다. 오래된 도심의 공공 장소이고 구조물을 활용하는 만큼, 바꾸어 낸 작업들이 겉으로 과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데 고심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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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고가 엑소노메트릭. 아스팔트를 잘라서 덜어 냄으로써 하중을 줄이고, 고가도로 속에 원래 있던 구조를 재활용해 다양한 길을 만듦으로써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시민들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이 안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걷는 길, 모든 사람을 위한 길

   "평균 13에서 17미터의 높이로 지상에서 떠 있는, 840미터 길이의 장소. 여태까지 자동차가 점유하던 도시 시설이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고 합니다. 시속 60킬로미터로 경험하던 차도를 자기 발로 스스로 체험하게 되었어요. 이것을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서 좋은 장소가 되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그냥 ’어~, 시원하다,’로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공원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이벤트 장소로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건 어디까지나, 길인 겁니다. 본래 어떤 두 지점을 잇는 공간이니까요. 길인데 사람을 위한 길이다, 거기서 출발할 수 있겠죠. 뻔한 말 같지만 단순하게 볼 수 없는 논의들이 있습니다. 역사, 지형에서 나오는 고유한 성격, 사람들의 흐름… 미묘하게 겹쳐진 층위들(레이어)을 공부할 수밖에 없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 다양한 층위들이, 이 다리를 새 길로 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체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동안에 여러 가지 도시 시설을 하면서, 대표적으로 청계천을 들 수 있을 텐데요, 그렇게 거대한 토목 사업을 했는데도 청계천의 의미를 제대로 보아 내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비판하는 목소리조차 거대한 인공 개천이라는 정도인데, 그게 아니라 서울이 맨 처음 정도전과 이성계에 의해서 계획이 되었을 때부터, 가장 밑바탕이 되는 원리와 이념이 이어져 있는 겁니다. 그런데 복원한다는 미명 하에 인공적으로 멋들어진 공간을 만들어 줌으로써 역사적 연결 고리를 아예 끊어 버렸거든요. 오히려 그저 개천처럼 흘렀을 때나 복개된 동안에는 간직하고 있었던 인식을 더 깨어 버렸다고요. 여기도 그렇게 될 공산이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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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고가 개념의 다이어그램 중 하나. 왼쪽 그림 이진경. 서울 성곽(노란 원)을 무너트리고 난 서울역(빨간 선)을 다시 잇는(파란 선)은 길이자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관문이라는 의미를 표현했다.]
 
 
 

    " ’찻길을 사람길로 바꾼다.’ 너무나 쉬워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길을 생각했어요. 장애가 있든 아니든 누구나 편한 길, 그게 엘리베이터 열심히 놓는다고만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봐요. 공간 자체로서 거기 있는 사람들이나 거기를 보는 사람들까지 서로 친근하게 느끼게 하고, 배려받는 약자라는 느낌이 아니라 거기서 사람으로서 당당해질 수 있는 길을 생각했어요. 자동차만 우선해서 생각할 때는 차가 가면 편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편한 곳이라고 나누지만, 사람의 보행을 전제에 둔다면, 지형의 특성을 잘 들여다보다 보면 답이 나오기도 합니다. 서울은 산을 끼고 성벽을 만들면서 형성된 도시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대도시를 따라해서만 해결되는 곳이 아니에요. 더 낫다는 게 아니라 워낙 산이 많은 우리 지형 안에서 도시를 만드는 어떤 사상이 발전되어 왔단 말예요. 그 지형 때문에 생긴 도시 구조를 잘 활용하면 풍요롭고 편한 길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도 있어요. 하늘에 떠 있는 공원도 좋지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하게 살고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어야만 의미에 합당한다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에 깔린 뜻이에요. 역사를 공유하고 지형과 경관의 체험을 공유하는 이웃과 함께 사는 도시에 대한 상징으로서 이 고가가 정립된다면 축복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도시의 인프라스트럭처를 만들고 써 왔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그것이 생겨났던 까닭과 유지되며 우리한테 주었던 체험을 어떻게 돌아볼 것인가, 도시의 시간성과 역사에 대한 성찰을 담아야 하지 않는가, 그런 생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꾸… 무거워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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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디어 스케치. 조성룡. 이 장소의 역사성은 서울이라는 도시 전체의 지형과 역사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고가 프로젝트는 우리가 이 도시를 인문적으로 재생시킬 수 있게 된 첫 기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에 하이라인을 만든다?

   "저것부터 얘기할게요. 작년, 2014년 4월에 서울연구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서울역 고가에 대해서 심포지엄을 하는데 좌장을 맡아줄 수 있느냐는 용건이었습니다. ’서울역 고가 하이라인…’, 대략 그렇게 시작하는 제목의 행사였습니다. 뉴욕 하이라인이 왜 이름으로 들어가느냐 물었더니 잠정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해요. 서울역 고가를 어떻게 할 건가에 대해서 얘기하는 자리 아니냐, 하이라인은 임시 이름이라도 적합치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하고, 사양한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작년 12월 말에 서울역 고가 국제 설계 공모가 추진이 되면서 서울시에서 참가 의향을 타진해 왔습니다. 일곱 명의 경쟁 건축가를 정하고 있는 중이라고요. 답을 빨리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전 4월에 한번 서울역 고가를 그렇게 접한 적이 있고, 이해가 잘 안 갔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에 "서울역 하이라인"이라는 조어는 사라졌지만, 뉴욕에서 시장이 인터뷰를 한 일도 있지요. 이게 어떻게 되어 가는 건가…, 신문 기사를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하이라인을 만든다고 발표되었는데 정말… 간단하지 않은 문제라고 여겼습니다. 두 개의 장소는 전혀 조건이 다를 뿐더러 국제적으로 알려졌다고 해서, 그것의 한국판을 만든다는 것은 나로서는 전혀 적당치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올해 2월 29일에 서울시에서 공모전을 시행한다는 뉴스를 내는 날까지, 두 달쯤 고민을 했습니다. 이걸 무슨 마음으로 해야 되는지,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요. 왜냐하면 제대로 설계를 하자면 사전 작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논란이 되는 남대문 시장과 만리동과의 관계, 고가 주변의 상황, 사람이 다니는 길로 바뀌면 교통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기타 여러 가지 도시적 문제들이 명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모전이 진행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그 자체의 절차만을 따지고 늘어지기에는, 정치가의 강한 의지에 의해서 추진되는 경향도 있지 않습니까. 내가 하든 안 하든 어차피 누군가에 의해서 강행될 거라고요. 그렇다면 지명받은 입장으로서 정치적으로 생겨난 기회를 어떻게 하면 시민에게 이로운 쪽으로 가게 할 수 있을지 궁리해 보아야 하지 않는가, 국제적으로 지명을 해서 널리 알리겠다는 이벤트를 오히려 제대로 가게 하기 위한 장치로 쓸 수는 없는가, 그런 방향에서 생각을 해야 될 의무는 있다고 봤습니다. 그 생각한 내용을 시민들에게 알려 주고, 그것이 어쩌면 조금이라도 정치가들하고 논의가 되면서 신중하게 접근을 할 기회가 된다면 좋고요. 내 견해하고 거리가 있으니까 무조건 피하는 것보다는, 물리적인 면으로도 합당하지만 시대 상황으로도 의미를 충분히 담은 제안으로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면 기여를 해 보자 하는 쪽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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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동 쪽에서 내려다본 서울역 고가도로. 사진 이정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일 : 공론장 

   "그런데 그것이 의지하고 관계없이 어려운 거지요. 그래서 주어진 지침을 참고는 하되 거의… 얽메이지 않고 맨처음으로 돌아가서 되도록 여러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했어요.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우선 이 일은 도시 재생과 이어진 프로젝트라고 보았기 때문에 도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했습니다. 조경가와 구조 엔지니어도 전문가 그룹에서는 필수였고요. 40년 정도 쓴 토목 구조물이고 그 상태가 약하다고 판정이 나면서 시작된 일이기 때문에 물리적 검토를 해야 했습니다. 또 한쪽에서는 고가라는 것이 무엇인가, 왜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거긴 작가, 평론가, 시인, 그 외 여러 분야의 인문학자, 음… 보통 건축 공모전을 할 때라면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던 분야들이 처음부터 들어왔습니다. 결과적으로 굉장히 많은 사람이 시민으로서 참가했어요. 희한한 건, 다들 자원해서 오고, 그 사람이 또 누군가를 끌고 오고… 그렇게 들락날락하면서 점점 모여드는 거예요. 남대문 시장 상인들, 오토바이 운전수도 만나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수집하고, 시에서 개최한 고가 포럼도 빠지지 않고 가서 듣게 하고요. 답사를 몇 번이나 갔는지 기억도 안 나요. 여럿이 같이도 갔지만 나 혼자 새벽에도 가고, 밤에도 가곤 했어요. 다닐수록 점점 할 일이 늘어나는 거예요. 그런 발견들을 조금씩 논의해가며 의미를 파악하고 앞뒤를 맞춰 가는 과정은 재미도 있었지만 몹시나 중요했습니다. 다들 처음에 들어올 때는 이 일 자체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이 컸어요. 고가라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 와서 자동차를 못 다니게 한다는 것, 충분한 사전 과정 없이 빨리 진행해야 된다는 정치적 태도 등등이죠. 그런데 함께 현장을 답사할 때마다, 그럼에도 생각해야 되는 부분들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뭐냐면,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끊임 없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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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고가와 서울 성곽, 그리고 현재를 GIS 데이터를 바탕으로 겹쳐 그렸다. 작성 서울시립대 창조도시기획연구실.]
 
 
 
질문은 고가가 아니었다 

   "제일 어려웠던 문제는 교통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단순하게 버스가 돌아가고 차선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서울역 고가를 중심으로 한 교통의 전체 시스템이죠. 그 대상은 고가 위의 자동차 길만이 아니고 수많은 버스, 시외버스, 두 개 노선의 지하철, 철도도 경부선, 경의선도 포함되요. 공항 철도도 생겼죠. 우리 나라 전체로 봐도 주된 교통 수단이 지상과 지하를 오가며 엉켜 있습니다. 제가 평소에 KTX를 타느라 역을 드나들 때마다 불합리하고 제대로 처리가 안 된 부분을 토로하는 걸 주변 사람들은 자주 들었을 텐데요. 한 번 떠올려 봅시다. 기차를 타는 게 주 목적인 공간인데 지하철에서 올라오면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몇 번이나 올라야 하고, 다 올라가면 뜬금없이 쇼핑몰부터 마주치게 되고, 또 다시 몇 번이나 내려가야만 겨우 기차를 탈 수 있습니다. 건물과 공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인상에 남지도 않아요. 서울역은 우리 나라의 가장 오래고 대표적인 철도 시설이자 지점이고, 여러 중요성을 지닌 곳인데 거기에 연결되는 교통망 시스템이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안 들어맞는 겁니다. 이 부정합이 어디서 시작이 되었는가를 살펴 보니까, 경성역이 일제 강점기에 이 자리에 서면서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건 역사 속에 지나간 사실(史實)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이 일대의 문제를 끝내 미궁 속에 남게 하는 현안인 겁니다. 서울역은 1925년에 지금 자리에 세워진 이래로 거의 90년 동안 상당히 확장되었지만, 여전히 통과역도 아니고 종점도 아닌 엉거주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종점에 가깝죠. 가끔 행신도 가고 도라산까지 가는 경의선도 있으니 통과역 기능도 있고요. KTX 역사가 설 때 바로잡을 결정적 기회를 놓쳤어요. 서부역사는 애초에 민자 역사였지만 이젠 아예 민간 기업의 상업 공간으로 쓰입니다. 서울역의 공간적 성격이 이렇게 애매한 상태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시민들도 그 거대한 공간을 공공적으로 인식하거나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서울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는지, 교통편을 어떻게 이용해서 서울역으로 접근하는지, 노숙인의 생활 상태도 관찰하고 장애인의 이동은 어떤지 등을 분석했습니다. 원래 과업에서는 퍽 확장된 내용처럼 보이지만, 서울역 고가를 사람 다니는 길로 바꾸는 데서 서울역 일대의 이런 내용들이 중요한 자리에 놓여야만 한다는 의식에 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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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의 경조오부도 부분을 다시 그리며 파악한 서울의 지형적 흐름과 의미 스케치. 조성룡.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와 온 산세의 지맥들이 서쪽으로 손가락처럼 뻗어나가고, 그 언덕과 골짜기에 이 땅의 역사가 새겨졌다.]
 
 
 
 
서울역, 남대문, 서울 성곽, 그리고 물길

   "고가가 처음에 왜 만들어졌는가. 거기 기차길이 지나가고 서울역이 있기 때문이지요. 처음에 고종 황제가 철길을 놓으려고 했을 때는 용산역 쪽으로 계획했습니다. 공덕동에서 북쪽으로 트는 노선이었는데, 나중에 일제가 지금의 서울역 쪽으로 철로를 고쳐 잡습니다. 그리고 남대문 정거장, 즉 서울 성곽 서남쪽에 있는 남대문 바로 앞의 기차 정거장이 1925년에 경성역으로 바뀌면서 숭례문과 서울 성곽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1907년 무렵에 숭례문 쪽의 성벽이 맨 먼저 헐린 것도 그렇습니다만, 나중에 일제에 의해 남산에 신궁이 세워지면서 성곽의 문으로서 숭례문의 기능은 사라지게 됩니다. 일본에서 신을 운반해 오는 이벤트가 경부선 개통과 서울역 개시였어요. 침략의 수단으로 서울역이 이 자리에 세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지요. 조선 시대에 숭례문이라는 장소는 우선 사대문의 하나이고, 중국으로 가던 의주로가 뻗어나던 곳입니다. 국도 1호쯤에 해당하던 국가적 간선도로지요. 그리고 조선조 후반부로 오면, 숭례문 바깥에 있던 시장, 칠패시장과 서남부의 마포, 서강을 연결하는 보부상들의 동선이 바로 이 고가가 난 방향과 겹칩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흔히 보는, 상단이며 보부상들의 주무대예요. 굉장히 상징적인… 길이죠. 600년 동안 교역이 이루어지던 그 루트에 서울역이 서면서 기존 기능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철도가 모든 것을 갈라놓게 되었습니다. 경인선이 처음 생길 때는 더 북쪽의 서대문정거장이 시발역이었다고 해요. 그걸 끌어내린 건 대단히 의도적인 거죠. 거기다가 놓아야만이 맥을 자른다는 거겠죠. 남대문을 두고 성 밖에 민간의 칠패시장이, 성 안에 남대문시장(남문 내 장시)이 있던 관계도 해체되어 버렸고요. 칠패 시장 터에는 지금 아무것도 없지요. 단지 국사범 처형장이었던, 시장 옆의 공터가 서소문공원으로 남아 있을 뿐예요. 이렇게, 600년 동안 이어지며 형성된 상인들의 흐름, 경제의 힘이 다 끊긴 상태로 우리가 20세기를 맞게 된 겁니다. 그러고 남산 밑 일대의 일본 사람들의 상권 속에 남대문시장이 재편되어 100년이 흘러 왔습니다. 이… 역사가 바뀌어도 뭔가 흔적이 남게 마련인데, 일제가 철길을 놓는 과정은 지속성을 아주 끊어 버리는 것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 나라 정기를 끊는다고 산마다 말뚝을 박았다는 것보다 훨씬, 실제적 영향을 미친 계획이라고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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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 서울역 위에 구불거리며 겹쳐진 푸른 선이 옛 만초천의 물길이다. 작성 이상구. 오른쪽 : 1925년 지도를 보면 일제에 의해 수로가 펴진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청파로가 이 물길을 복개한 길이다.]
 
 
 
 
 "그런데 공부를 해 보니까, 이 곳으로 철길이 나는 건 또한 너무나 자연스런 원인이 있더라고요. 물길이기 때문에 낮고 평평해서 철로를 부설하기 가장 경제적인 거지요. 무악재에서 발원해서 한강으로 흐르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 서쪽의 가장 주된 물길이었는데, 일제에 의해서 직선화되었다가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습니다. 숭례문 앞 남지(南池)도 비슷한 운명이었죠. 제국주의의 강압으로 놓인 철길에 의해 이어져 오던 것이 사라지고, 서쪽과 동쪽이 분단된 겁니다. 그러면 1945년 해방이 되고 난 다음에 우리가 이 문제를 다시 생각을 해야 될 터임에도 불구하고, 된 게 없는 거죠. 오히려 선로가 더 부설이 되고, 이제는 어쩔 수 없어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6.25전쟁도 큰 짐이 되었겠지요. 아는 것처럼 전국민이 남쪽으로 피난을 가고, 서울역이 다른 양상을 맞게 되면서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갔겠죠. 그런데 이제 와서 잃어 버린 성곽이나 흔적들을 이미테이션으로 복원하는 건 큰 의미가 없잖아요. 이 도성이 어떤 논리로 생겼고, 거기 어떤 일들이 있었고, 사라지게 되는 과정과 결과를 잘 엮어서, 서울역 고가도로를 새롭게 만드는 이 작업의 의미에 포함시켜 낸다면 우리가, 이 도시에 대한 생각을 다르게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사소한 것 같지만 중요하다 싶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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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지 인근의 문화재, 옛 지형을 현재 지도에 겹쳐 작성한 지도. 이 일대는 가장 번화하고 발전된 지역임과 동시에 옛 지형과 길,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고가에서 이런 장소들을 조망하는 것은 은연 중에 역사에 대한 조망으로 이어진다.]
 
 
 
 
구시대의 흔적, 없애면 시원하지 않습니까?

   "1970년에, 자동차에 의존하는 시대가 되면서 불편을 참지 못해서 고가 도로를 놓게 됩니다. 김현옥 시장 때 여러 도시 재정비 사업을 하는데, 고가 도로는 적은 비용으로 쉽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서울의 여러 곳에 동시에 고가가 들어섰습니다. 신나는 시대죠….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 체험 중의 하나가 삼일로의 이미지일 겁니다. 청계천고가의 램프가 내려오는 부분이죠. 배경에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삼일 빌딩이 솟아 있는 사진인데, 극장에 가면 대한뉴스가 나올 때마다 첫 장면에 등장했습니다. 그러면 가슴에 손을 얹고, 허…,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던… 그런 시절이 꽤 오래 지속이 되었죠. 고가의 곡선과 고층 오피스 건물의 형태는, 우리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도시가 확장되던 때의 이미지로 머리에 뚜렷하게 박혀 있거든요. 그걸 이명박 시장 때 순식간에 바꾸어 버린 게 지금 청계천 일대의 풍경이잖아요? 서울역 고가도, 신문 보도 사진을 보면, 1980년 5월 16일… 서울역 앞을 가득 메우고 고가와 램프까지 올라간 군중 사진이 있어요. 과연 그 공간 자체가 도시의, 가장 흔히 목도하는 아이콘이었거든요. 광장도 아니고, 그저 도시 기반 시설(인프라스트럭처)로서요. 1970년대 서울의 도시 공간이 재구성될 때 필요성 때문에 생긴 것들을 21세기 들어 없애야 하는 시간대에 왔습니다. 이 시간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성숙된 시민 의식이 있다고 봐요. 없애 버리고 ’아우, 시원하다’, 하고 말기에는 너무나 간단치가 않은 것이, 최근에 들어서 약수니 아현이니 고가를 철거했습니다. 언론에 처음 나온 시민들의 반응은 좋다는 내용이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문제가 튀어나왔죠.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도 나오고요. 거기서 영업하던 사람들이 쫓겨 나가고 대형 프렌차이즈가 들어오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도시의 문제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게, 어떤 부분을 쓸어 버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 고가 프로젝트가 바로 그런, 마지노선에 있는 거 겉애요. 여러 면을 봐야 되지 않겠나…. 그건 이 ’장소’가 복잡한 생각을 강요하는 거지요. 멀리 도시 외곽에 지나가는 고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잖아요. 그렇지만 이 곳은 그것을 없애거나 유지하는 것이 각각 우리의 삶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를 더 진지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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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6일. 이른바 서울역 회군이라고 이름붙여진 시위 장면. 시민들은 널리 호소할 사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고, 서울역 고가는 그 사건들을 목도하며 서 있었다. 민주화 역사의 증언대로서 서울역 고가의 의미를 처음 소개한 이는 미술 평론가 김종길이었다.]
 
 
 
 
서울역 고가, 이것은 길이다

   "서울역고가는 아현이나 장충동, 약수동 고가하고는 성격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대개 고가 하면 기존의 도로 위를 가로지르지만 여기서는 철도 위를 지나기 위해서 설치되었거든요. 상인들 반대가 극심했던 까닭도 동서를 잇는 다른 연결로가 없다는 것이었잖아요. 주목해야 할 것은 지형의 문제입니다. 처음에 기차가 여기에 난 것은 물길을 따라서라고 했죠? 그 위를 가로지르는 고가는 철길(즉 물길)이 단절한 주변 지형을 잇고 있죠. 서쪽의 만리현(만리재), 아현(애고개) 또는 약현(약밭고개)과 동쪽의 남산 자락을 거의 수평으로 잇는 겁니다. 도로 위 고가라면 이름 그대로 올라갔다 내려가겠지만, 여기서는 그게 아니라 조금 높이 있는 양 지점을 거의 수평으로 이어서 오히려 푹 꺼진 철길을 건너갑니다. 우리가 이 고가를 자동차로 건널 때면 자연스럽게 올라타는 느낌을 받는 것도 바로 이런 지형에서 연유합니다. 그렇게 보면 경관상의 고려에 의한 문제는 있을지언정, 기능적으로는 합리적인 장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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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고가와 같은 높이를 표시한 지형도. 갈색으로 표시된 넓은 면이다. 역 근처에서 보면 높이 가로지르는 듯 보이지만, 물길로 단절된 두 언덕을 이어 주는 다리와 같은 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길을 걷는 길로 바꿀 때는 새로운 고려를 해야 했습니다. 우선 이 840미터 전체를 과연 일상적으로 완주하는 시민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물론 관광객이나 놀러 나온 시민들이야 있겠죠. 그렇지만 그 지역에 늘 있거나 필요에 의해 이용하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잖겠어요. 상인들은 낮 동안 생업하고 관련된 일로, 큰 건물 사무실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점심 시간이나 퇴근 시간에 더 자주 이 공간에 접속하겠지요. 어떻게 걷느냐도 문제입니다. 우리 나라 날씨가 살랑살랑 기분좋은 날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여름의 무더위, 쨍쨍 쬐는 햇볕, 겨울의 눈바람, 비, 더구나 막아 주는 데 없이 공중에 떠 있는 장소에서 사람이 걷는다는 게 뭘까요. 각각의 경우에 따라 다른 쓰임을 어떻게 고가가 부담할 수 있을 건가. 그건 누구나 불편함 없이 가는 길에 대한 생각과도 연결됩니다. 누군가는 빨리 가야 하고, 누군가는 날씨를 피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가만 서서 경치를 구경하며 생각에 잠기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다들 서로 기분좋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이어야 하지 않겠나. 원래 있던 도로 외에 다른 기능을 맡는 길을 추가할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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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고가 단면 계획. 1 Goga + 3 Walkways. 거더라 불리는 기존 구조를 뜯어내어 몇 가지 장치를 하면 여러 개의 재미있는 길 조합이 만들어진다. 민주적 가치, 인문적 정신과 예산, 구조, 그리고 디자인의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는 본질적인 접근이다.]
 
 
 
 
구조 안에 해답이 있었다 : 고가 안에서 발견해 낸 세 개의 얽힌 길

   "방법은 여럿 있을 수 있죠. 그런데 뭔가를 덧붙이면 구조적으로 부담을 주니까 공사비를 더 많이 써야 되고, 시각적으로도 장벽같은 고가의 부피를 키워야 하거든요. 몇 가지를 비교 검토해 보니 현재 다리의 모습을 비교적 유지하는 것이 지상에서 걸어다니는 사람들이나 자동차 안에서 보았을 때 도시 경관으로서 제일 편안하겠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있던 구조 형태에서 덜 드러나고, 많이 손을 대지 않으면서 새로운 길을 만들 방법을 찾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어느날 우리 팀에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내 입으로 기가 막히다고 하니 좀 그렇지만요, 교각 위에 거더(girder)라는 철골 구조물이 있어요. 상판을 떠받치고 있는 키가 높은 보인데, 아스팔트 상판의 일부를 잘라내면 그 안으로 지나다닐 수가 있어요. 단서가 잡히기 시작한 거예요. 거더 깊이가 1.8미터쯤 되는데, 아스팔트 면보다 살짝 높여서 지붕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비를 피하거나 해를 피하는 통로가 생기겠어요. 그러면 지붕 위도 또 하나의 윗길로 할 수 있잖아요. 이렇게 해서 세 개 또는 네 개의, 서로 얽히는 길 시스템을 고안했습니다. 하다 보니까 재밌게 되었어요. 바깥에서는 별로 드러나는 게 없지만, 안에서는 내려가다가 올라가다가 굉장히 다양한 변화가 생기거든요. 그 이름을 ’고가 + 세 개의 길’이라고 붙였습니다. 다양한 필요에 따라서 또는 외부 조건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공공의 길을 누가 쓸지, 어떻게 쓸지를 한 가지로 정하고 제시할 수는 없잖아요. 이게 시민의 돈을 가지고 하는 것인데… 쓸데없는 데 돈을 허비하지 말자 마음을 처음서부터 먹었기 때문에 구조와 디자인을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궁리했고, 그런 아이디어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아이디어라고 보지만 서울시에서는 아이디어가 아닐 수도 있죠. 여튼 우리는 다리를 고치는 데 책정된 공사비를 아껴서 딴 데 쓸 수 있다고 제안했어요. 다리 이름은 그냥 ’서울역 고가’라고 명명했어요. 이름을 정하고 보니까, 인문적으로 괜찮은 거 겉애요. 지금까지 고가, 고가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서울 스테이션 오버패스니 서울 스카이웨이라느니, 이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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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길 CG. 그림 3Gfocus. 가장 높은 층부터 원래의 아스팔트면, 지붕 아랫길과 더 밑길까지 네 개 층의 길이 생긴다. 각 길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도 있고, 윗길에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아 놀거나, 지붕 있는 길로 햇볕을 피할 수도 있다.]

 
 
 
아스팔트와 단청

   "길 위는 쓰던 아스팔트 포장을 되도록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리했어요. 아스팔트라는 재료가 19세기 말에 인도의 포장을 위해서 개발된 재료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보면 오히려 합당하다는 역사적 의의도 있고요, 두 번째로는 유지 관리 면에서 가장 경제적이고, 또한 시간이 지나가면서 금세 자연 친화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한여름 혹서기에는 복사열이라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부분적으로 나무 데크 길을 두어서 선택할 수 있게 하면 되겠고요. 아스팔트를 사람들이 자꾸 걷다 보면 균열이 생기고, 거기에 풀씨들이 날아와서 새로운 생명을 틔우고… 이렇게 시간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참여를 강요하지 않더라도 일상적인 사용이 자연스럽게 참여로 이어지는 거죠. 이제 시민의 공간으로 돌아오는 거니까 교각의 아래쪽을 올려다보는 경관도 고민했어요. 철골 거더에다 오방색을 이용한 현대적 감각의 단청 칠을 하면 로컬리티를 어느 정도 드러낼 수 있겠다 싶어요. 이 또한 뭔가 새로 덧붙이지 않았어요. 철골 구조 위에는 어차피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칠을 해야 되니까, 그렇게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즉 고가 표면은 구태여 원래 형태를 변형시키지 않으면서도 그 자체의 표면은 계속 바뀌는 그런 재료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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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계획. 왼쪽 고가 위는 관리가 쉬운 초화류 위주로 했다. 오른쪽처럼 나무를 땅에 심는다면 땅과 고가 위의 사람 모두에게 이롭다.]
 
 
 
 
 
높은 다리 위에 나무를 심는 일이 상식적일까?

   "사람이 다니는 길이기 때문에 녹색 공간이 마련되야 되지만, 과도한 식재는 줄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높은 다리 위에 나무를 심는다는 것이 의미도 잘 연결이 안 되고, 그 위에서 자연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을까도 고려해야 되고요. 거기에다 많은 흙을 부어서 나무를 심는다는 게 공사비부터를 어마어마하게 증가시키키거든요. 고가가 지상하고 가깝게 만나는 땅에 군데군데 키 큰 나무를 심으면 고가 위까지도 가지가 뻗어 오르겠죠. 예를 들어 만리동 쪽은 원래가 습지였으니, 지리 특성을 연상시키는 나무들을 정할 수 있겠죠. 옛 기록들도 찾아 보고, 버드나무라든지 느티나무처럼 예전부터 거기에 자연스럽게 자랐을 나무들을 심어서 지상의 길과 관계를 맺게 했습니다. 고가 위는 억새나 야생화처럼, 비교적 관리를 많이 안 해도 되는 초화류 위주로 계획했습니다. 그런 풀들은 늘 생생한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퍼지거나 시들고, 계절에 따라서 계속 빛깔이 바뀌잖아요. 사람들이 그런 계절의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시를 인지하게 하는 중요한 팩터라고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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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시간에 따른 다양한 상황의 시뮬레이션. 기후가 나쁠 때는 지붕 아래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자동차 도로 때의 조명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은 기억을 이어 주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밤에는 또 어떨까. 하늘이 깜깜해졌을 때 이 다리 위에 서 있는 사람의 느낌과 체험은 어떨까. 주변 건물들이 불을 밝히고 위아래의 길에도 조명이 달린 도심이니까 고가 위까지 지나치게 밝을 것은 없겠어요. 자동차 도로 때부터 쓰던 가로등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발밑을 밝혀 줄 정도면 충분히 안전할 겁니다. 좌우간 이 곳이 되도록이면 새로 만든 근사한 공원, 스펙터클하고 환상적으로 연출된 장소가 아니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냥, 여기 오랫동안 길이 있었고, 거기에 세월이 얹어지고 사람들이 걷다 보니까 또 자연스레 길이 덧붙고, 그렇게 주변 도시 경관과 어우러진 길로 이 고가가 자리매김했음 좋겠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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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운용 계획. 위는 시에서 제시한 안이고, 아래는 조성룡 팀에서 제안한 안이다. 고가 위에 나무를 심지 않는다면 구조 보강 비용(주황)을 반으로 줄이고, 그 대신 조경(녹색)과 주변과 연결되는 공공 시설(파랑)에 더 충분히 투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고가 위에 화려한 나무를 많이 심는다면 조경 비용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구조 비용이 전체 예산을 초과할 것이다.]
 
 
 
 
 
공공의 세금을 공공으로 돌리자

   "지침상에 나와 있는 예산은 320억 원이었습니다. 큰 프로젝트죠. 그 중에 260억 원이 기존 다리 보강 비용입니다. 예산의 70% 이상이죠. 그런데 시에서 준 안전 진단 검사 보고서를 구조 엔지니어들과 같이 꼼꼼히 읽어 보니까 전체 교각을 조사한 게 아니라 나쁜 샘플을 기준으로 평균한 값이었어요. 실제로는 어떤 구간은 윗부분만 고치면 되고, 기둥을 고칠 구간, 거더를 고칠 구간 등이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보수를 하면 그렇게 큰 비용을 안 써도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전제는, 지금까지는 자동차의 무게와 자동차가 움직일 때 미치는 강도를 견뎌야 되던 다리였지만 사람은 그 오분지 일 정도의 무게에 불과해요. 물론 40년 써서 약화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워낙 하중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딱히 위에 나무를 많이 심거나 하기 전에는 경제적인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죠. 이미 오래 쓴 구조물을 고쳐 쓰자는 일인데, 잘 쓸 수 있을 만큼만 살살 정리한다면 시에서 제시한 비용의 반 정도로도 충분하겠다, 그렇게 아낀 비용을 가지고 공공적인 데 활용한다면 훨씬 도시 재생의 효과가 드러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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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매듭. 1 Goga + 7 Stories. 주변에 공공적 파급력을 지닐 수 있는 일곱 개의 지점에 매듭을 묶어 고가의 힘을 도시 전체의 재생으로 확산시킨다.]
 
 
 
 
 
고가 더하기 일곱 개의 이야기 : 시 짓기와 도시 계획의 창발적 공식

   "그래서 아낀 돈을 어디다 쓰느냐, 그것이 일곱 개의 매듭이에요. 전체 840미터 고가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흐름에 따라서 여섯 개 구간으로 나눠서 일곱 군데의 점을 만들고, 그 일곱 지점마다 리본으로 묶듯이 매듭을 만드는 거예요. 고가와 그 리본들이 서로 작용해서 어떤 힘을 주변 지역에 전달하도록요. 첫 번째가 서울 성곽이 시작되는 데 알아요? 남산에서 내려오는 성곽길이 남대문 시장 앞 도로하고 만나는, 고가의 시작점이에요. 성곽길이 고가하고 어떻게 만날 건가. 시인하고 같이 이름을 붙여 나갔는데요, 고가에다 뭔가 더해 가면 공공적으로 전혀 다른 효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법칙이에요. ’고가 + 성벽’은 답이 뭐겠어요? ’피보트(Pivot)’라고, 우리 말로 돌쩌귀라는 거 있지요. 큰 두 개의 문짝을 연결하는 경첩이에요. 남산에서 내려오면 돌아서 고가로 오르게 되는데, 그 모퉁이에 마침 건물이 있는 거예요. 삼선빌딩이라는 오피스 빌딩인데, 그 저층부 3개층을 마치 경첩처럼 돌아서 오르내리는 데 쓰면 남산에서 오는 동선이 완전히 바뀌겠더라고요. 민간인 건물이지만 활용하면 좋겠다 싶어서 빌딩주을 직접 찾아갔어요. 협조할 용의가 있느냐, 했더니 자기도 너무 좋다는 거예요. 만약 이 안이 되면 서울시하고 얘기해서 공간을 공공에 내 주겠다고요. 그 빌딩이 피보트가 되는 거죠. 그런 식으로 일곱 개를 만들어 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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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매듭. Goga + Market = Festival Days. 고가 하부에 남대문 시장의 주종목으로 이루어진 편집 매장을 두면 여행자나 관광객들을 더 자연스럽게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남대문 시장, 양동, 남산 자락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길 

   "두 번째는 남대문 시장하고 어떻게 고가를 묶느냐. 근데 남대문 시장을 가 보니까 이건 뭐 엄청나게 복잡해요. 고민고민 하다가 떠올린 게, 남대문 시장 안의 주 업종이 있잖아요. 악세사리, 안경, 아동복…, 그런 게 시장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으니까, 파일럿 숍을 다리 밑에다 만들자고 했습니다. 가게가 길 한가운데로 나오는 거죠. ’고가 + 시장’은 ’페스티벌 데이즈(Festival Days)’라고 했어요. 원래 장날이 잔치같잖아요. 차 없는 날을 정해서 페스티벌을 열 수도 있겠죠. 세 번째는 양동이라고 불리던 동네예요. 지금 남대문로 5가인데 세브란스 빌딩 바로 뒤부터 숭례문 사이입니다. 거긴 옛 지도와 대조해 보면, 조선 시대의 길 조직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예전에 우리가 말하던, ’역전앞’이거든요? 그 동네를 처음 답사 간 날인데, 대낮에 평상에 앉은 할머니들이 ’아저씨, 놀다 가세요!’ 그래요. 역의 기능이 주막을 겸한 그런 게 주종이잖아요, 아직도 남아 있는 거예요. 나쁜 것도 조금은 있겠지만 중요한 생태죠. 거기는 되도록 손을 대지 않는 대신 콜렉트 숍 구경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오도록 했어요. 거기 붙인 이름이 ’렛 리브(Let Live)’였어요. 재개발 하지 말고 그냥 살게 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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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매듭. Goga + Virtical Circulation = Pavillion. 직장인들의 이동 편의를 위한 수직 동선은 서울역과 주변 문화재 경관을 조망하는 정자가 된다.]
 
 
 
  "네 번째 매듭은 세브란스 빌딩하고 서울 스퀘어 사이에 교통섬이 하나 있는데요, 고가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길을 더했어요. 주변 여러 빌딩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인데, 거기서 보면 구 서울역사가 바로 눈앞에 근사하게 펼쳐져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남대문 교회가 딱 들어오고요. 우리 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 중 하나죠. 세브란스 빌딩도 제중원의 후신이잖아요? 그런 근대 초기의 흔적들이 고층 빌딩들에 가려서 지금까진 잘 안 보였거든요. 그래서 고가 + 수직 동선은 ’파빌리온(Pavillion)’이 되는 거예요. 서울시에서 주변 고층 건물 중간을 관통하는 17개의 연결로를 만들겠다고 시민들에게 발표한 적이 있어요. 지침으로 받은 적도 없는 내용이지만, 사무실 안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애써 벽을 뚫을 필요는 별로 없겠더라고요. 길을 건너면 서울역에 수직으로 내려오는 통로를 또 하나 만들었는데, 이 근처 지하도에 노숙인이 많잖아요. 통로를 지하도까지 통하게 뚫어서 해가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그걸로 노숙인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겠죠. 하지만 노숙인의 삶에도 뭔가 연결이 되는, ’도시의 등대(Urban Beacon)’입니다. 지금 서울역 광장은 파출소며 헌혈 센터가 일부 점유하고 있는데 이런 시설들이나 노숙인 재활 프로그램을 통로 안에 정리하면 시민들에게는 더 넓은 광장을 돌려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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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매듭의 아이소메트릭. Goga + Station = Urban Beacon. 등대는 누군가에게는 조망을 하게 함으로써 누군가에게 빛을 비추어 길을 안내한다. 도시 등대를 통해 고가는 구 서울역 뒷길로 이어진다. 이 길은 근대 건축 유산인 서울역사의 촉지적 조망 지점과 철도 여행자에게 빠른 이동 경로를 제공한다.]
 
 
 
 
 
서울역의 미래를 그린다

   "이런 식으로 서울역까지 왔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서울역이었어요. 내가 하도 서울역만 들여다보니까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말릴 정도였어요. 지금 KTX를 위주로 한 역사에서 구 서울역은 역의 기능을 잃고 죽어 있고, 서쪽 귀퉁이에 경의선 올라가는 쪼그만 역이 있고, 남쪽으로 한참 가야 공항철도가 있어요. 내가 관찰해 봤더니 경의선 내린 사람들이 뒤에 있는 계단으로 구름겉이 몰려서 지하철로 내려가요. 그런데 가운데는 마트가 다 차지하고 있다고요, 말도 안 되는 거지. 통일이 되면 역과 철도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대책도 잘 안 읽혀요. 그런 미래까지를 바탕에 두고 보았어요. 단계적으로 보면, 지금 롯데마트가 쓰는 공간이 내후년에 임대 만료가 되요. 거기를 공공 공간으로 바꿀 수 있겠어요. 그리고 KTX와 공항철도까지 순조롭게 연결되는 동선을 만드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역 안쪽 공간과 동선을 정리함으로써 이어지는 고가의 역할이 산책용을 넘어서게 되거든요. 서울역에 내린 여행자들이 조금 돌아가더라도 고가로 나가서 도시 경관을 조망할 수도 있죠. 두 번째 단계는, 민자 역사로 쓰던 공간과 구 서울역 뒤까지를 이어서 재생을 위한 공간을 만들 수 있겠어요. 전시장을 한다든지 여러 안이 있을 텐데, 일례로 시기를 거치면서 점점 축소된 서울역 광장을 위쪽에 새로 제안할 수도 있겠죠. 장기적으로는 보행자의 동선을 위주로 서울역 전체를 재편하되, 통일이 되었을 때 철도의 쓰임까지를 고려한다면 명실상부한 서울역으로 거듭날 수 있겠지요. 한 도시의 역이 갖고 있는 장소의 힘이 있는 거예요. 최소한 백 년의, 근대라는 흐름이 쌓은 힘이죠. 지금 시대에 복잡해진 교통 수단이 거기 다시 응축되어 있습니다. 그 힘들이 퍼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하는 어떤 콘덴서로 거듭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