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s of seeing] 이 건축물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 ways of se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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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02-16 01:36:01
조회: 6,401  
제목 ways of seeing [ways of seeing] 이 건축물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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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평의 작은 대지에, 100평도 되지 않는 규모에서 다양한 공간 구성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근원이 무엇인지 정리해본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건축물은 우연의 산물이다.
 
십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수많은 우연이 형성되었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1995년에 조성룡도시건축을 처음 다니면서,
사무실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일은 책 정리였다.
 
일본에서 발행된 잡지중 <주택특집>, <도시주택>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책을 정리하면서 이 잡지들을 재미있게 보았는데,
아주 작은 주택들을 다양한 공간 구성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1996년, 도시건축에서 일본건축기행을 다녀왔다.
동경에 머무르면서 여러 건축물을 답사하였는데, 그 중에 아주 작은 주택을 보게 되었다.
건축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노출콘크리트로 지어진 주택이었는데,
4층 정도의 규모에 각 층에 하나의 방만 겨우 배치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아주 작은 규모였다.
노출콘크리트도,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처럼 말끔한 표면이 아닌,
공사비가 부족해 주변에서 주워온 합판을 거푸집으로  사용한, 말 그대로 콘크리트를 노출했을 뿐인 것이다.
 
1997년, 종로5가에 지하1층, 지상4층 규모의 150평짜리 통닭집을 설계하게 되었다.
대대로 이어온 2층짜리 낡은 통닭집을 허물고 새로 건물을 짓고자 하는 계획이었는데,
1,2층의 통닭집을 연결하는 내부계단, 3,4층 근린생활시설을 이어주는 또다른 계단을
최소한의 공간에 풀어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아쉽게도 공사예산을 너무 초과하게 되어 짓지 못하였다.
 
1998년,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노천카페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카페 테라스에 대한 즐거운 기억을 갖고 있다.
 
2000년,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R.M Schindler의 작품집을 보면서 내민 창에 대한 글을 읽고
재미있는 구성요소가 될 것이라 여겼다.
이 기억은 얼마전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10여년 동안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후로도 수년동안 여러가지 우연이 이어졌을 것이다.

2008년 여름, 건축주가 모도를 찾아왔다.
유럽풍의 빈티지한 카페를 짓고 싶다는 의견이었는데,
모도를 찾기 전에 이미 다른 건축가와 수개월간 작업을 해 온 프로젝트였다.
오랜 시간동안 작업을 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계획안이 만들어지지 않아 다른 곳을 찾아온 것이다.
 
이 건축물의 기본 틀은 3일만에 만들어졌고, 건축주는 계획안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하며 설계작업을 진행했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주변 여건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장소장님이 계획안대로 공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셨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캔틸레버 계단의 거푸집을 5번이나 다시 작업할 정도로 열성을 보이셨던 것이다.
 
무엇보다, 설계자의 의견을 항상 존중해주었던 건축주가 있었기에 좋은 결실을 맺은 것이다.
 
2008년의 작업을 다시 돌이켜보면,
주택특집을 모르고, 일본에서 그 주택을 보지 않고, 통닭집을 설계하지 않고,
유럽의 카페에 앉아보지 않고, 쉰들러의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결과물이 과연 나올 수 있었을까?
 
앞으로는 또 어떤 우연이 겹쳐 인상적인 결과물로 이어질지 사뭇 기대가 된다.
그 우연을 쌓기 위해 지금도 책을 뒤적이고, 전시회를 둘러보고, 영화를 감상한다.
 
건축이,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임을 상기한다.